현대차그룹(이하 현대차)이 차량용 반도체 사업에서 독일 인피니언테크놀로지스와의 오랜 밀월 관계에 균열을 내려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현대차는 올초 차량용 반도체 사업 강화를 위해 `제 2의 보쉬`를 표방한 현대오트론을 출범시키면서, 전장부품 협력사들을 긴장시켰다. 당장 전장의 핵심인 차량용 반도체 분야에서 인피니언에 이어 다른 협력사로 구매처 다변화에 나설지 관심이 쏠린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현대오트론 출범 후 현대모비스와 업무 통합을 추진하는 한편, 기존 전장 협력사 업체들과 거래 관계 비중을 조정하는 작업을 검토 중이다. 최근에는 현대모비스의 연구·구매 업무를 현대오트론으로 이관, 통합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5월에는 현대차가 그동안 전략적으로 보유했던 독일 보쉬의 지분을 정리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독일 완성차 메이커와 경쟁하는 상황에서 보쉬 지분 청산을 통해 부품 의존도를 줄이면서 독일계 자동차 업계와 경쟁해 보겠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현대차의 오랜 차량 반도체 협력사이자 역시 독일 업체인 인피니언의 진로가 최근 시선을 끌고 있다. 현대차 구매 목록에는 지금까지 인피니언만 한 중량감 있는 차량 반도체 업체가 없었다. 지난 2007년 현대차는 인피니언과 차량용 반도체 개발 전략적 제휴를 맺고 공동 연구개발(R&D) 센터를 운영해왔다. 그만큼 인피니언에 대한 차량 반도체 의존도가 절대적이었다는 뜻이다. 지난달에는 페터 바우어 인피니언 회장이 전격 방한해 현대차와 협력 강도를 높이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오트론 출범 후 양사 협력 관계의 변화는 물밑에서 감지된다. 실제 얼마 전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 엔지니어 40여명이 현대차 그룹 관계사들과 함께 비공개 세미나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의 차량 반도체 제품 로드맵 및 연구개발(R&D) 현황 등을 공유했다는 전언이다. TI는 미국계 반도체 업체이자 인피니언의 텃밭인 차량 반도체 시장을 공략 중이다. 이에 대해 TI코리아 관계자는 “고객사에 엔지니어들이 파견되는 것은 통상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규모 엔지니어가 이처럼 한꺼번에 결집한 경우는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TI는 올초부터 차량용 반도체 매출 비중을 연내 세 배 가까이 늘리겠다며 공격적인 행보를 진행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인피니언과 지속적인 협력 관계를 맺고 있지만 아날로그 반도체 공급망을 TI로 확대 또는 변경할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지난 2010년 19조9500억원이었던 세계 차량용 반도체 시장 규모는 오는 2015년 32조34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정미나기자 min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