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 오지은씨(28), 서류를 통과했다는 문자를 받고 기뻐 폴짝폴짝 뛰었다. 그런데 다음날, 면접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학교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정장을 입을 일이 없었다. 당장 면접 정장을 사려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은 생활비와 등록금을 갚기에도 빠듯하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도 민망하다.
![한만일 열린옷장 공동 대표](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2/10/26/347151_20121026171950_367_0001.jpg)
오씨 같은 이에게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해 줄 수 있는 서비스 `열린 옷장`을 소개한다. 희망제작소에서 함께 `소셜 디자이너 스쿨(SDS)`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박금례·김소령 씨가 의기투합한 서비스다. 두 사람은 취업 전선에 뛰어든 후배 얘기를 나누다가 `면접 복장을 빌려주는 서비스를 하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여기에 한만일 씨가 합류, 팀이 갑자기 꾸려졌다.
아주 단순한 서비스다. 면접이나 결혼식 등 주요 행사가 있을 때 형식을 갖춘 옷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저렴한 가격에 옷을 대여해 준다. 기존 의류 대여 매장에서는 정장 한 벌에 5만원 이상 내고 빌려야 했다면 열린 옷장에서는 세탁비와 보관비 정도만 들이면 품질 좋은 정장을 빌릴 수 있다. 특히 브랜드를 구분하지 않고 치수 등에 맞춰 대여하기 때문에 질 좋은 정장도 저렴한 가격에 이용 가능하다.
열린옷장은 단순하게 정장 대여에 머무르지 않는다. 옷을 매개로 서로의 경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플랫폼을 지향한다. 한만일 대표는 “옷을 매개로 스토리를 만들고, 정보도 얻을 수 있는 커뮤니티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 옷을 기증하는 취업 선배가 취업 노하우를 적어내고, 이 옷을 대여한 취업 준비생이 자신의 취업 성공담을 쓴다. 단순히 옷을 빌려 주는 게 아니라 서로의 삶을 공유하는 게 목표다.
가격은 1만8000원, 택비비와 세탁비를 빼면 거의 남지 않는 수준으로 정했다. 옷은 기증에 의존한다. 이미지컨설팅, 보이스컨설팅 등 부가서비스를 이용할 경우에만 추가 비용을 받는다. 별다른 홍보도 하지 않았는데 취지만 듣고 많은 사람들이 이 서비스에 관심을 보였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몇몇 연예인도 열린옷장에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7월 사이트를 연 후 70회 가량의 대여가 이뤄졌다. 10월 들어 취업 시즌을 맞아 정장 대여 문의가 하루 10건 이상 들어온다.
기증 문의도 쇄도한다. 여성의류 발렌시아에서는 종류별로 정장 10벌을 기증했다. 갤러리아 백화점과도 3년 이내 정장을 가져오면 상품권으로 교환해주는 행사를 함께 진행했다. 디자이너들이 모인 프로젝트 그룹에서는 `희망스카프` 프로젝트를 신설해 스카프를 판매한 금액을 기증하는 캠페인도 열었다.
사무실에는 편지 꾸러미가 있다. 기증자와 대여자가 보낸 편지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취업에 성공한 사람, 자신이 취업할 때 입었던 옷을 기증하며 보낸 이야기 등 다양한 메시지가 오고간다. 단지 편리함을 추구하는 게 아닌,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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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