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나 산하 공공 기관은 매년 국정감사를 받는다. 국감은 국회가 입법 기능 외에 정부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기능이다. 매년 20일 동안 치르는 국감이지만 정부나 산하 공공 기관에는 고역이다. 국회의원의 질타에 해당 부처 장관이 고개 숙이는 일은 다반사다. 때로는 모욕 수준의 비판도 있다. 오죽했으면 `국감만 없으면 천국`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을까.
정부가 국감을 꺼리듯 민간 기업도 피하고 싶은 게 있다. 세무조사다. 통상 5년에 한 번꼴로 이뤄지지만 올해는 심상치 않다. 지난해 세무조사를 받은 A사는 얼마 전 갑자기 들이닥친 국세청 공무원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회사를 이전하고 막 자리를 잡으려 하는데 예상치 못한 복병이 나타나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암시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세무조사는 형식이고 목적은 세금이었다. 연말까지 12조원의 세금을 추가로 걷으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것이다. 어디에 쓰일 재원인지는 모르겠지만 옛날에나 있을 법한 일이 현대 사회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곤 한다. A사는 하는 수 없이 세금을 내기로 하고 처분만 기다리고 있다.
세수가 부족한 지방자치단체 처지에서 보면 유치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는데 기업이 관내에 들어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환영할 일이다. 버선발로 뛰어나가 맞이해도 모자랄 판에 더 나은 기업 활동을 위해 옮겨 온 기업에 기다렸다는 듯이 세무조사를 무기로 추가 세금을 징수하겠다고 하니 기가 막힐 지경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지만 참으로 안타깝다. 기업은 세무 당국에 한없이 약한 존재다. 기업에 아킬레스건인 세무조사를 들이밀기보다는 기업이 경영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돈을 번 만큼 기꺼이 세금을 내게 하는 분위기 마련이 아쉽다.
기업뿐만 아니다. 일반 국민도 마찬가지다. 최근 들어 교통법규 관련 단속이 부쩍 강화됐다. 운전자들에게는 이미 교통신호, 과속, 음주운전 경고령이 떨어졌다. 법규를 어겼기 때문에 부과하는 범칙금이나 벌금이지만 과도한 단속은 달갑지만은 않다.
대선 후보와 정치권은 앞다퉈 증세와 경제 민주화·복지 확대를 외치고 있다. 전국 거리는 `중증질환 100% 국가책임` `비정규직 차별철폐` `내년부터 반값 등록금` `어르신 기초노령연금 2배` `의료비 본인 부담 연간 100만원 상한제` `정년 65세 단계적 실현` 등의 내용을 담은 현수막으로 도배됐다. 대부분 `안 되면 말고`식의 묻지마 복지 현수막이다. 선심성 복지 정책만 가득할 뿐이다. 부족한 세수를 국민 세금으로 충당하려는 얄팍한 꼼수다.
이런 식이면 다음 달 대선에서 어느 쪽이 집권하든 선심성 복지 공약에 정부 발목이 잡힐 게 불을 보듯 뻔하다. 당장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세제·예산안이 수정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복지 혜택이 많으면 좋겠지만 주머니에서 돈 나가는 것을 좋아하는 기업이나 국민은 없음을 정부와 대선 후보는 다시 한 번 숙고해야 할 것이다.
주문정 논설위원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