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17명의 자녀

사업에 성공해 상당한 재력을 지닌 아버지 K씨. 자식 복이 많아 열 여섯 명을 키우고 최근에 또 한 명을 얻었다. 열 일곱 명의 자녀를 잘 키워 국가 산업 발전의 역군으로 만드는 것이 K씨의 꿈이었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 K씨는 자녀 양성 로드맵을 마련했다. 자녀별 특성화 계획도 세워 실행했다. 학습 목표를 설정해 자녀들이 이에 따르도록 했다. 학습 효과를 높이고자 용돈을 차별화해 성적 향상 경쟁도 시켰다.

그런데 성인이 된 열 일곱 명 자녀의 모습은 K씨의 바람과는 많이 달랐다. 성공한 장남과 차남 등 두세 명을 제외한 대부분이 변변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채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였다.

K씨는 다시 나섰다. 자신이 유망하다고 생각한 업종을 골라 자녀들에게 사업 밑천을 안겨주었다. 잘 안 되자 두세 명이 뭉쳐서 사업을 크게 해보라고 강권했다. 그렇게 10년 이상을 애썼지만 자녀들 상황은 예나 지금이나 엇비슷했다.

오히려 자녀들의 불만이 커졌다. 아버지의 지나친 간섭에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못했다는 얘기다. 사업 자금을 대줄 때는 가능성 있는 자녀를 선별해 좀 더 확실하게 밀어줬어야 했다는 말도 나왔다. 자녀들은 이제 아버지의 전 재산을 쪼개 각각 자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녀 양성에 실패한 책임은 K씨에게 있다. K씨는 돈줄을 쥐고 자신의 뜻대로 교육했고, 자녀들은 아버지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자녀들의 처지와 불만은 그 결과물이다.

대선이 다가오면서 다시금 지방분권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다. 지역에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을 창립했다. 지방의회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지방분권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대선 후보들에게 요구한다. K씨의 고민은 다름 아닌 우리나라 지역산업과 지역경제가 처한 현실이다. 지역이 주체가 돼 자율적으로 산업을 육성하고 이에 책임까지 지는 지방분권체제를 깊게 고민해 볼 시기다.

임동식 전국취재 차장 dsl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