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음식 맛의 특징은 숙성에 있다. 간장, 된장, 고추장도 모두 숙성시켜서 맛을 내는 양념이다. 밥도 짓는다고 한다. 집을 짓듯이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야 밥맛이 살아난다. 밥을 짓는 마지막 단계에서는 뜸을 들인다고 한다. 밥을 뜸 들이지 않고 먹으면 밥맛이 없다. 마지막 기다리는 시간에 밥맛이 드는 것이다. 밥맛은 기다리는 숙성 기간에 완성되는 것이다.
사람도 밥맛이 없는 사람이 있다. 진정성이 없고 하고 싶은 말 그대로 내뱉는 사람 치고 밥맛이 있는 사람은 없다. 밥맛이 있는 사람은 모두 남을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알고 작은 일에도 다 다른 사람 덕분이라고 생각하며 감사할 줄 안다. 밥맛이 있는 사람은 뭔가 잘못되면 먼저 자기 잘못은 없는지 따져보고 반성한다. `내 탓이오`를 연발하면서 먼저 자신을 낮추고 잘못의 원인도 자신에게서 먼저 찾는다. 반성과 성찰을 거쳐 성숙한 인간미를 닦아 나가는 것이다. 밥맛이 있는 사람은 밥도 살 줄 안다. 남에게 얻어먹고만 사는 사람 치고 밥맛이 있는 사람은 드물다.
밥맛이 있는 사람은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인생의 묘미를 깨달은 사람이다.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너그러운 자세, 관조적인 태도로 삶을 내다보고 용서하고 이해하며 감싸 안는다. 깨달음도 앎과 삶이 버무려져 숙성될 때 비로소 찾아오는 식견이자 혜안이다. 정보가 주는 깨달음보다 지식이 주는 깨달음, 지식보다 지혜가 주는 깨달음이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정보보다는 지식, 지식보다는 지혜가 숙성되는 기간을 거쳐 보다 많은 인간적 통찰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가 숙성돼야 지식이 탄생하고 지식이 숙성돼야 지혜로 거듭난다.
과연 우리는 정보를 지식으로, 지식을 지혜로 숙성시키는 노력을 전개하고 있는가? 숙성시켜야 성숙한 아름다움이 드러나고 능숙한 지혜를 발휘할 수 있다. 숙성은 그동안 쌓은 경험적 노하우, 습득한 정보와 지식, 보고 들은 다양한 내용을 나의 독창적인 색깔로 버무리고 섞어서 보다 원숙한 내용으로 재탄생시키는 과정이다. 완성은 존재하지 않지만 숙성 과정으로 내공을 연마하고 단련한다면 완성에 가까이 갈 수는 있다. 미완성의 연속 그 자체가 삶인지도 모른다.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