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왔다. 품질 보증서를 위조해 10여년간 원자력발전소에 부품을 공급한 업체를 적발했는데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재발 방지를 위해 발본색원해 마땅히 벌을 줘야 한다. 그런데 더 큰 걱정이 생겼다. 품질 보증서를 위조한 부품이 가장 많이 들어간 영광원전 5, 6호기 가동을 멈추고 연말까지 정품 부품으로 모두 교체하기로 한 게 발단이 됐다. 그렇지 않아도 올겨울은 유례없는 혹한이 올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여기에 설계수명이 끝나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계속운전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월성 1호기도 지난달 말 고장으로 멈춰 선 상태다. 영광 5, 6호기의 발전용량 200만㎾와 월성 1호기 용량만 얼추 따져 봐도 270만㎾의 공백이 생겼다.
우리나라 최대 전력공급 능력은 8213만㎾다. 전력당국은 올겨울 피크 전력수요가 8018만㎾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영광 5, 6호기 가동이 늦어지고 월성 1호기가 계속운전 승인을 받지 못하면 자칫 블랙아웃(광역정전)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9·15 순환정전만으로도 엄청난 피해가 있었는데 블랙아웃 수준에 이르면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은 “무슨 일이 있어도 블랙아웃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올해 들어 원전이 고장으로 정지한 횟수만 아홉 차례다. 언제 어떤 고장으로 어느 원전이 멈춰 설지 모를 일이다. 지난여름 풀가동 탓에 10기가량이 계획 예방정비를 앞두고 있어 겨울철 전력수급대책을 마련하는 전력당국은 매일매일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석탄화력발전소도 방심할 수 없다. 최근 몇 년간 여름과 겨울철 피크에 대비해 풀가동하다시피 해 피로가 누적됐기 때문이다. 올해 석탄화력발전소도 21건의 발전 정지 사례가 있었다. 도처에 지뢰밭인 셈이다.
정부는 산업용 강제 절약 목표를 부여하고 공공기관 비상 발전기 사용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하지만 임시방편일 뿐이다. 덕분에 최근 국회에서 의결한 전력부하관리 사업비도 4046억원에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미래를 내다보는 발전소 건설계획 안목이 절실한 시점이다. 10여년 전만 해도 전력이 남아도는데 무슨 발전소를 그리 많이 짓느냐는 핀잔을 들을 정도였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최근 몇 년은 전력공급 문제로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필요하지 않은 발전소를 지을 필요는 없지만 적정 수준의 발전소는 필요하다. 발전소 풀가동의 의미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이웃 일본의 풀가동 개념은 발전능력 100%를 다하는 것이 아니라 70∼80% 수준으로 가동하는 상태라고 한다. 반면에 국내 발전소는 평상시에도 최대 발전용량에 도달할 정도로 풀가동한다. 공급용량에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고장 없는 발전소가 더 이상할 정도다.
주문정 논설위원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