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 비사]<114>대통령직 인수위(2)

공직사회에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파견은 출세코스로 통했다.

역대 인수위원회 파견 인사 중 장관 등 고위직에 오른 사람이 적지 않았다. 정보통신부에서 15대 대통령직 인수위로 파견 나갔던 안병엽 정보화기획실장(현 KAIST 석좌교수)은 복귀 후 정통부 차관을 거쳐 장관 자리에 올랐다. 이어 17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1998년 1월부터 인수위원회는 새 정부 국정설계 작업에 착수했다. 정치 지형 재편 속에 정국은 요동쳤다. 그 여진은 행정부를 뒤흔들었다.

인수위의 가장 큰 임무는 새 정부 집권 5년간 국정운영의 청사진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인수위는 분과위별 회의를 열고 소관 부처별로 주요업무 보고를 받았다. 인수위 업무보고는 해당부처 차관이 했다.

부처별 업무 보고 내용은 이종찬 인수위원장(국가정보원장 역임, 현 우당장학회 이사장)이 취합해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에게 다시 보고했다. 인수위는 급박하게 돌아갔다.

1998년 1월 13일.

정보통신부는 오전 10시 인수위 사무실에서 주요 업무보고를 했다.

정통부에서는 박성득 차관(현 한국해킹보안협회장, 한국모바일인터넷 이사회 의장), 이성해 기획관리실장(큐앤에스 회장)과 실무진이 참석했다. 인수위에서는 경제Ⅱ분과 최명헌 간사(노동부 장관, 새천년민주당 사무총장 역임)와 박선주(판사, 15대 국회의원 역임, 현 변호사), 지대섭(청호컴퓨터 회장, 15대 국회의원 역임, 현 서울마주협회장), 한호선(농협중앙회장, 15대 국회의원 역임) 위원, 전문위원 등이 참석했다.

박성득 전 차관의 회고.

“오래전 일이어서 명확하지는 않지만 주요 현안과 차기 정부에서 추진할 국정 과제를 보고했습니다.”

이날 업무보고에 배석했던 이교용(정통부 정보통신정책실장, 우정사업본부장 역임, 현 한국우취연합회장) 당시 인수위 경제Ⅱ분과 전문위원의 증언.

“이날 정보통신부 보고에서는 크게 두 가지가 핵심 사안이었습니다. 하나는 문민정부가 허가한 PCS사업자 선정과 관련한 의혹 제기였습니다. 사업자 선정 관련 자료를 제출해 줄 것을 정통부에 요구했습니다. 최명헌 간사가 이를 강력히 요청했습니다. 인수위 출범 후 문민정부에서 이뤄진 대형 프로젝트에 대해 이를 규명하겠다는 말이 나돌아 긴장했는데 의혹을 제기하더군요. 박성득 차관이 이런 의혹제기에 대해 납득할 만큼 설명을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한국전력의 케이블TV망을 이용한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참여 여부인데 이는 한국전력의 통신사업 참여와 직결되는 문제였습니다. 이 두 가지가 정통부 보고 시 현안이었습니다.”

이날 인수위의 PCS 심사기준 변경 이유와 당시 기안서류 등 자료 제출 요구는 서막에 불과했다.

정보통신부는 이날 업무보고에서 PCS 등 신규 통신서비스 조기 상용화로 인해 사업전망이 어두워진 발신전용 휴대전화서비스인 CT-2(시티폰)사업 구조조정을 적극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통부는 이를 위해 `사업자 간 인수·인계협정`을 체결, 전국사업자인 한국통신과 지역사업자 간 가입자 및 시설의 이관 등에 대해 자율적인 협상을 추진토록 적극 유도할 계획이라고 보고 했다. CT-2사업은 1997년 3월 수도권에서 상용서비스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모두 11개 사업자가 총 3600억여원을 투자, 전국 29개 도시에서 서비스 중이었고 69만여명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입자 수가 손익분기점인 300만명에 미달하고 PCS, 위성휴대통신서비스(GMPCS), 차세대이동통신서비스(IMT-2000) 등의 신규서비스 등장으로 적자가 늘고 사업전망이 불투명해져 일부 지역사업자가 포기 의사를 표명했다.

정통부는 가입자 보호를 전제로 CT-2사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한편, 모든 사업자들의 건의를 수용해 기지국 검사비용, 접속통화료 등 부담을 경감하고 기지국 출력을 대폭 증대, 통화품질 개선 등 서비스를 다양화·고도화하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보고했다.

이날 경제Ⅱ분과위원들은 정통부 업무보고가 끝나자 초고속정보통신망 사업은 수요 측면을 적극 반영해 민간통신사업자의 적극적 참여와 경제성 제고에 적극 노력하고 과잉의욕으로 자원의 낭비를 초래하지 않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인수위는 이후 새 정부에서 추진할 100대 국정과제를 선정했다.

이종찬 인수위원장의 증언.

“당시 정부는 IMF라는 경제위기 상황 속에 출범했습니다. 인수위에서는 총체적 국가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100대 국정과제를 선정했습니다. 이 중에서 40개 국정과제가 경제와 관련한 것이었습니다. 정부 관련 부처와 당 관계자, 그리고 학자들을 모아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선거공약을 바탕으로 국정과제를 선정했습니다. 누구든지 입각하면 제일 먼저 생각하고 우선적으로 실천해 달라는 일종의 주문서였습니다. 정말 심혈을 기울여 만든 100대 국정과제였습니다.”(`인수위 67일이 정권 5년보다 크다` 중에서)

이교용 인수위 전문위원의 말.

“국정과제를 선정하기 전에 분과위원회별로 리스트를 제출하게 한 후 이를 인수위원 전체회의에서 결정했습니다. 처음에 분과위별로 간추린 국정과제는 100대보다 더 많았습니다. 최종 결정과정에서 탈락한 과제가 다수였습니다. 과제는 인수위에서 대통령 당선자의 공약과 정책 사업의 연속성 등을 검토해 100개를 선정했습니다. 수많은 논의를 거쳤습니다.”

100대 국정과제 중 경제 분야가 40개였다. 이 중 정보통신 분야 3개가 차기 정부 국정과제로 선정됐다. 하나같이 21세기 정보화 사회 준비를 위한 필수 과제였다.

인수위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대선공약으로 제시한 정보화 사회진입과 IMF 경제난 극복에 정보통신산업 수출이 큰 몫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 1인 1PC운동을 전개하고 초고속정보통신망을 조기 구축하기로 했다. 특히 정보통신 분야의 핵심기술 개발로 수출을 늘려 IMF 체제에서 일찍 벗어나기로 했다. 인수위는 국민의 정보이용 능력을 높이기 위해 전국 초중고교의 컴퓨터 교육을 강화하고 소프트웨어 산업과 벤처기업을 중점 육성한다는 내용을 국정과제에 포함시켰다. 이런 국정 과제 선정은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다.

인수위가 선정한 정보통신 분야 3개 국정과제는 다음과 같다.

1. 정보화 촉진으로 1인 1컴퓨터 운동 전개

가. 필요성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지식정보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기초 사회간접자본인 초고속정보통신망을 조기에 구축한다. 정보화의 장애요인이 되는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정보보호와 정보공동 활동을 위한 표준화를 추진한다.

나. 추진계획

2010년까지 32조원을 투입해 초고속정보통신망을 앞당겨 구축한다. 기간 전송망은 예산을 지원해 2002년까지 광케이블로 전국 모든 시내전화 통화권역(144개 도시)에 걸쳐 구축하고 이용요금 인하를 추진한다. 가입자망은 민간자본으로 광케이블과 무선망·기존 전화선·CATV망 등 경쟁을 통해 민간 투자를 유도한다. 2002년까지 전국 모든 지역에서 시내 접속이 가능하도록 인터넷전용 기간 전송망을 구축한다. 상호접속을 원활히 하기 위해 각종 기기와 소프트웨어, 통신시스템 표준화를 추진한다. 전자상거래를 통한 각종 법령을 제정하거나 개정한다.

다. 1인 1컴퓨터 유도

정보화를 촉진해 1인 1컴퓨터 사용을 생활화하고 규제를 완화하며 통신요금 인하를 유도하는 등 이용활성화 방안을 강구한다. 일상생활에 편리한 소프트웨어 공급을 크게 늘린다. 각종 정보통신시스템을 안심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정보보호기술에 대한 민간이전을 확대하고 각종 시스템의 안정과 신뢰도를 향상시킨다.

2. 정보통신 인력 양성과 전략적 핵심기술 개발

가. 필요성

컴퓨터를 활용한 국민 정보이용 능력을 전문가 수준으로 양성한다. 부가가치가 높고 지식 집약적 산업인 정보통신분야의 핵심기술 개발과 수출확대로 IMF 체제를 앞당겨 극복한다.

나. 추진계획

정보통신 인력 양성에 대한 투자를 확대한다. 2002년까지 6500억원을 투입해 산업체에서 필요한 전문 인력 44만명을 공급한다. 정보화 기술개발투자를 확대한다. 2002년까지 정보화촉진기금 6조1000억원을 투자해 차세대 이동통신(IMT-2000)과 디지털방송기술, 멀티미디어기술을 개발한다. 국민의 정보이용 능력을 높이기 위해 전국 초중고교의 컴퓨터교육을 강화하고 신세대, 군 장병 등 잠재인력을 정보통신 인력으로 양성한다.

소프트웨어 산업과 정보통신 기업 육성을 적극 지원한다. 소프트웨어 지식소유권 보호제도를 강화하고 우수제품이 조달될 수 있도록 조달 제도를 개선한다. 정보통신 벤처기업 창업지원센터를 통해 시설제공과 창업지원을 확대한다. 민간 실수요자가 개발하는 첨단통신 지식단지 개발과 입주 활성화를 위한 세제. 금융상 지원을 확대한다.

3. 다채널시대 개막 및 디지털TV방송 시행

가. 필요성

국내 위성방송 허가지연으로 위성방송사업 활성화 차질이 발생해 일본 등 외국 위성방송의 국내침투가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TV방송디지털화를 적극 추진한다. 이를 위한 영상소프트웨어와 송수신기 등 관련 산업도 육성한다.

나. 추진계획

위성방송 허가 및 다채널화를 추진한다. 통합 방송법을 조기 제정해 국내 위성방송을 허가한 후 서비스를 시작한다. 위성방송 관련 산업 활성화 기반을 구축한다. 디지털TV방송 실시로 방송산업발전 여건을 조성한다. 아날로그TV에서 디지털TV방송전환 계획을 확정짓는다. 디지털TV방송 실시를 위한 기술표준과 표준화 작업을 추진한다. 디지털TV방송 기술개발과 시험방송 및 본 방송을 실시한다.

이런 국정과제는 김대중 집권 5년간 정보통신정책의 밑그림이 됐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