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사는 수술용 의료기기업체다. 이 회사는 `신의료기술` 최종 인증을 받는 데 5년이 걸렸다. 5년 동안 논문, 특허 등 인증 추가절차에 약 30억원을 썼다. 의료기기를 수출하려면 판매 실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 내 판매 실적이 없으니 수출도 불가능했다. 해당 기간 국내외 추정 매출 손실액만 400억원에 달한다.
정부가 의료산업을 키운다며 마련한 `신의료기술평가제도`가 되레 산업 발전의 전봇대가 됐다.
정부기관 간 중복평가와 불명확한 평가기준에 의료 기업들이 시간·금전적 어려움을 호소한다. A사 사례처럼 평가에 5년이 넘게 걸리다 보니 사실상 새 의료기술을 `구의료기술`로 만든다.
정부는 2007년 신의료기술평가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2010년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이 출범하면서 본격 시행됐다. 의약품·의료기기·의료기술의 임상적 효과와 경제적 효율성을 분석해 과학적 근거를 국민에게 제공하고 궁극적으로 국민건강의 질 향상에 기여하기 위해서다. 특히 무분별한 새로운 의료기술(기기, 의약품) 도입으로 인해 급격히 늘어나는 건강보험 급여비의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겠다는 목적도 작용했다.
하지만 도입취지와 달리 의료기기 업체들은 해당 제도가 식품의약품안전청 등 관련기관과의 중복규제, 불명확한 평가기준에 따른 어려움을 가중시킨다고 주장한다. 새 의료기기를 개발해 시장에 판매하려면 식약청의 품목허가를 받고도 NECA에서 다시 유효성과 안전성 인증을 받아야 한다. 의약품은 2006년 이후 식약청 허가 후 판매할 수 있지만 역시 의료보험 급여로 인정받으려면 NECA 인증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식약청에서 받았던 기계·전기적 기술 분석과 시험성적서는 물론이고 병원 임상결과도 다시 제출해야 한다. 특히 NECA에서 요구하는 추가자료(해외 논문 및 임상사례 등)는 그 기준이 모호하다. 기업들이 제대로 대처하기 힘들다 보니 해당 제품의 출시 시기가 너무 늦어진다. NECA의 신의료기술 평가기간은 평균 200여일이 걸린다. 5년까지 걸린 사례도 있었다.
A업체 관계자는 “식약청과의 중복검증과 기준 없는 추가자료 요구 등 시간과 금전적 손실이 너무 크다”며 “의료기기도 의약품처럼 의료보험 적용은 못 받더라도 일단 시장에 판매할 수 있는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B업체 관계자도 “긍정적인 도입 취지를 살리기 위해 기업들의 현실적인 요구에 귀 기울여 달라”며 “최소한 최종 평가위원회에 임상실험을 담당한 의사가 참석해 설명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NECA 이선희 신의료기술평가본부 연구위원(본부장대리)은 “해외도(국내와 같은) 공통된 절차를 거친다”며 “다국적기업들은 중복 등 절차적 문제에 전혀 불만을 거론하지 않는데 우리나라 기업들만 중복이라는 말을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업계는 인증 등 행정적 절차에 익숙한 해외 공룡 의료기업들과 이제 시작 단계인 국내 기업과 역량 차이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순 비교 자체가 역차별이라는 지적이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m
신의료기술평가제도
의약품·의료기기·의료기술을 판매하거나 적용하기 위해 인체 유해성 등 안전성과 효율성 등을 평가받는 제도다. 1차 허가를 식품의약품안전청이 한다. 의약품은 식약청 허가를 통해 판매가 가능하지만 의료기기 판매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 인증이 필요하다. NECA 인증을 받아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험급여 적용을 받는다. 제도 도입 당시엔 식약청이 허가와 인증 업무를 모두 담당했으나 2010년 NECA 조직이 출범, 인증 업무를 전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