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측기 업계, 중저가 시장 경쟁 치열

애질런트·텍트로닉스·르크로이 글로벌 톱3 계측기 업체가 국내 중저가 시장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동안 세 회사는 나름의 영역을 구축해 독자적인 성장을 이어왔다. 그러나 국내 계측기 시장 성장세 둔화, IT융합에 따른 영역 파괴로 가격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세계 계측기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애질런트가 최근 국내에 출시한 계측기는 모두 중저가 시장을 타깃으로 한 제품이다. 지난 8월 스마트폰 베이스밴드칩 성능을 테스트할 수 있는 파형 발생기를 내놨고, 7월에는 스마트폰·스마트패드로 원격 제어할 수 있는 휴대형 계측기를 출시했다. 지난해까지 연구소용 고가 계측기만 주로 출시했던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애질런트는 미국·일본 등에 산재해 있던 생산 라인을 말레이시아 패낭으로 일원화했다. 원가 절감에 집중해 가격 경쟁을 대비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윤덕권 한국애질런트 사장은 “고가 계측기 중심에서 핸드헬드·스코프 등 중저가 제품 라인업을 추가하면서 애질런트의 사업 전략 자체가 바뀌었다”며 “가격은 낮추되 기술력 수준은 유지하는 전략으로 중저가 계측기 시장에서 애질런트의 영향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중저가 계측기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텍트로닉스·르크로이는 제품 라인업을 강화하고 가격 경쟁력을 높이면서 대응에 나섰다.

지난달 텍트로닉스는 대학 등 교육용 시장을 타깃으로 한 오실로스코프를 출시했다. 오실로스코프는 진동 현상을 영상으로 나타내는 장비로 전기·전자 공학 분야에 사용되는 계측기다. 이 제품은 70MHz에서 200MHz의 대역폭을 지원하고, 1M 포인트 레코드 길이를 제공한다. 기존 제품에 비해 성능이 떨어지지 않지만, 가격은 10~20% 가량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최초로 5년 무상 보증 서비스도 내걸었다.

지난 5월 텔레다인과 합병한 르크로이는 최근 새로운 오실로스코프 HDO 시리즈를 출시하면서 중저가 계측기 시장 공략에 나섰다. 오실로스코프 성능은 대역폭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르크로이는 정확도를 장점으로 내세워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중가형 시장에서 강세를 보여온 르크로이는 신제품 출시를 계기로 국내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그동안 일반 IT기기에 비해 계측기는 가격 경쟁이 느슨한 편이었다. 글로벌 기업들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고, 가격 민감도가 떨어지는 연구소를 중심으로 계측기가 사용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계측기 시장도 가격 압박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국내 대기업들이 해외 투자를 늘리는 대신 국내 투자를 줄이고 있어 시장 파이가 더 이상 커지지 않고 있다. 계측기가 연구소 외 생산라인에도 사용되면서 범용화된 것도 가격 압박이 강해진 요인이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