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친환경 시장 `에코디자인`이 연다<8회>에너지효율과 에코디자인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갓 시작한 K씨는 TV를 구입하러 가전매장에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 대기업 가전제품이 매장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제품들이라고 했다. 직원은 선명한 화질과 다양한 기능을 갖춘 것은 물론 에너지 소비가 적어 `그린컨슈머`에게 특히 인기 있다고 귀띔했다.

에너지소비효율등급라벨.
에너지소비효율등급라벨.

◇국내 에너지효율 제도·제품 `명품`

우리나라 가전제품이 해외에서 우수한 에너지효율로 상을 받거나 인증을 획득했다는 소식을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국내 기업들은 고효율·친환경이 글로벌 규제 대응을 넘어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제품의 주요 특성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연구개발을 지속해왔다.

에너지효율 제고는 에코디자인의 핵심이다. 이제 국내 업체들은 세계 유수 기업과 견주어도 우수한 평가를 받는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친환경·에너지절약에 관심이 높은 소비자를 중심으로 판매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우수한 평가를 받는 것은 제품만이 아니다. 고효율 제품 보급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제도 역시 세계 어느 나라보다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제도가 에너지소비효율등급표시제150도, 고효율에너지기자재인증제도, 대기전력저감프로그램 세 가지다.

에너지소비효율등급표시제도는 지난 1992년 시행됐다.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면서도 보급률이 높은 제품을 대상으로 1~5등급으로 에너지소비효율등급라벨을 부착하도록 하고 최저소비효율기준 미달제품은 생산·판매를 금지했다. 1등급에 가까울수록 에너지를 많이 절약할 수 있으며 1등급 제품은 5등급 대비 30~40% 에너지 절감이 가능하다.

소비자들이 에너지 절약형 제품을 쉽게 구입하고 제조(수입)사가 생산(수입)단계부터 고효율 제품을 생산·판매하도록 하기 위한 의무 신고제도다. 에너지소비효율등급라벨은 자동차·냉장고·에어컨 등 24개 제품에 적용하며 전기장판·전기온풍기 등 11개 품목에는 별도의 에너지소비효율라벨이 붙는다.

고효율에너지기자재인증제도는 에너지효율·품질시험 검사 결과 정부가 고시한 일정기준을 만족하는 제품을 고효율에너지기자재로 인증하는 제도로 1996년부터 시행됐다. 고효율제품의 보급 활성화와 초기시장 형성을 위해 마련됐다. 제조(수입)업자의 자발적인 신청을 통해 에너지관리공단에서 고효율에너지기자재 인증서를 발급한다.

대기전력저감프로그램은 전자제품을 사용하지 않을 때 소모되는 `대기전력`을 줄인 우수제품 보급을 확대하고 관련 기술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만들었다. 대기전력저감 기준 만족 제품에는 에너지절약마크를 임의로 표시할 수 있으며 미달 제품은 경고표시를 의무화했다. 대기전력저감프로그램 중 경고표시제 대상 19개 품목의 제조·수입업자는 반드시 고시된 기술기준·측정방법에 따라 제품을 시험한 후 결과에 따라 60일 이내에 신고해야 한다.

세 제도를 통한 우리나라의 에너지 절감 노력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008년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우리나라가 비교적 단기간에 의무적인 효율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고 평가했다. 개발된 국가 프로그램의 우수사례를 통합시켰고 대기전력저감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는 제품을 대상으로 경고라벨 부착을 의무화해 경각심을 일으키는 등 새로운 실행과제를 수립했다고 분석했다.

◇국제규제 대응도 `빈틈없이`

에너지효율 제도는 에너지 절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각 국가에서 만든 제도는 수출 기업에 규제로 작용한다. 수입국에서 정한 일정 기준의 에너지효율을 만족하지 못하면 판매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보통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전자정보통신진흥회(KEA)는 다양한 활동으로 국내 기업의 수출을 지원하고 있다.

KEA는 지난해 멕시코 에너지라벨링 제도 시행을 2개월 유예시켜 국내 업체들의 피해를 막았다. 멕시코 정부는 2010년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기술장벽(TBT) 통보문을 통해 186개 제품에 대한 에너지 효율 표시제도 시행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라벨링 방법과 도안을 정하지 않아 기업들은 혼란이 가중됐다.

멕시코 정부의 조치를 두고 KEA는 기술표준원에 산업계의 애로사항을 설명하고 정부 차원의 적극적 대응 필요성을 피력했다. 우리나라는 멕시코 정부 담당자와 회의를 열고 당초 지난해 9월 시행 예정이었던 관련법을 11월에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2개월간 전자제품 제조업체들은 제품 재설계나 제품 라벨링 도안 개발 등 수출에 필요한 조치를 취했으며 이를 통한 비용절감은 109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에는 유럽연합(EU)의 LED 조명 관련 규제 대응에 나섰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4월 LED 조명등의 최저 에너지효율과 기능 요건 등에 관한 이행지침 초안을 발표했으며 요건을 만족하지 않는 제품은 유럽 시장에서 유통을 금지시켰다.

KEA는 관련 업계를 대상으로 규제의 파급효과를 조사하고 조명연구소·시험인증기관 담당자와 관련 기술적 분석을 수행했다. 심층적인 분석·검토를 위해 기술표준원 TBT 중앙사무국과 근거 자료를 마련했다. TBT 중앙사무국은 지난 6월 LED 패키지 소자를 인증할 경우 완제품은 시험을 면제하는 사항과 LED조명 에너지 효율을 저하시킬 수 있는 요구사항에 대한 개정을 요청했다. 이달 말 개최되는 WTO TBT 위원회에서 EU와 협의를 진행한다.

에너지 규제에 사전대응하기 위한 작업도 활발하다. 사전대응은 입법과정에서 산업계 입장을 고려해 법의 상세내용을 만들어가는 룰메이킹(Rule Making) 방식으로 합리적인 법률 제정에 기여해 기업의 규제대응 잠재비용 소모를 저감하는 역할을 한다.

KEA는 에너지 법률 사전대응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유럽연합의 에너지 관련 법률에 대해 유권해석을 얻어내기 위한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EU는 TV에 에코디자인 규정을 적용해 대기전력이 0.5W를 넘지 않도록 제한했다. 하지만 국내 기업의 일부 제품은 특정모드로 돼 있을 경우 0.5W를 넘을 수 있어 예외사항을 명시한 대기전력 규정 가이드라인을 적용할 수 있는 지 파악이 필요했다. KEA는 EU 대표부를 통해 TV가 별도의 규정이 있음에도 대기전력 규정 가이드라인을 적용할 수 있다는 EU 집행위원회의 유권해석을 얻어냈다. 이를 통해 기업은 제품의 설계사양을 변경하지 않고 EU 시장에 수출을 지속할 수 있었으며 제품회수·재설계 등 불필요한 조치에 따른 비용·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무역기술장벽(TBT)이란

무역기술장벽(TBT)은 무역 상대국간의 서로 다른 기술규정, 표준, 적합성평가절차 등을 채택·적용해 상품·서비스의 자유로운 교역에 불필요한 장애를 만드는 것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다. 에너지효율에 대한 규제는 대표적인 TBT 사례로 꼽힌다.

무역의 자유화·세계화로 관세 부과, 수입수량제한 등 전통적인 무역장벽은 줄어드는 반면 기술규정, 표준, 적합성평가절차 등의 기술장벽 관련규제가 주요한 비관세장벽으로 부각되고 있다. TBT는 자국의 기술적 우위를 이용해 배타적 수단으로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WTO가 출범하면서 각국에서 채택·적용하는 기술규정 등이 국제무역에 있어 불필요한 장애를 초래하지 않도록 보장하기 위해 WTO 회원국을 대상으로 강제력을 가지는 WTO TBT 협정이 체결됐다. 이에 따라 무역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술규정이나 적합성평가절차를 제·개정할 경우 WTO 사무국을 통해 다른 WTO 회원국에 통보하도록 했다.

기술표준원은 국내 수출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통보문에 대해 관련 국가로부터 새로운 규제내용에 대한 상세원문을 입수·분석해 관계 기관, 업계와 공동으로 대책 마련을 하고 있다. 반대로 우리나라에서 새로 제·개정하는 기술규정에 대해서는 WTO 회원국에게 통보해야 하는 의무사항도 준수하고 있다.

◇삼성전자·LG전자, 고효율 제품도 `내가 최고`

최근 독일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12`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초고효율기기(SEAD) 글로벌 어워드` TV 부문을 모두 석권했다.

소형·중형·대형 등 3개 부문으로 나눠 진행된 평가에서 삼성전자는 29인치 미만 소형제품과 29~42인치 중형제품 등 2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LG전자는 LG 시네마3D 스마트TV로 대형 TV 부문에서 수상했다. SEAD 글로벌 어워드는 북미·유럽·호주·인도 등 4개 지역에 판매되는 제품을 평가해 에너지 효율이 가장 우수한 제품에 수여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주관하는 `에너지스타 어워드`에서 최고상인 `올해의 파트너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에너지스타 어워드는 에너지 절감에 참여한 제조·유통·서비스업체를 대상으로 하는 시상식이다.

LG전자도 올해 같은 상을 받았다. LG전자는 △에너지 고효율 제품 개발·판매 △에너지스타 라벨부착 활동 △직원 대상 에너지 교육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등의 활동을 인정받았다.

LG전자는 최근 국내 최고 에너지효율을 달성한 시스템에어컨 `멀티브이 슈퍼4`를 출시하기도 했다. 이 제품은 초고속 인버터 콤프레서를 적용해 14마력 제품 기준으로 냉난방효율(EERa) 4. 84를 달성했다. 냉난방 효율 1등급 기준인 3.5보다 35% 이상 높은 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