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민우 벤처기업협회 회장(kimjh@dasannetworks.com)
지난달 미 하원 정보위원회가 중국 화웨이와 ZTE 통신장비의 미국 안보위협을 경고하자 네트워크 보안이 국제적으로 이슈로 떠올랐다. 수입 재개가 허용되며 미국 내 논란은 진정되는 듯 보이지만 미국에 이어 캐나다·호주·영국 등 네트워크 장비의 보안 이슈는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최근 국내에서도 국가 평가인증(CC)과 보안 적합성 검증 제도 강화 등이 거론되는데 네트워크 장비의 본질적 특성상 우리 역시 해당 논란에서 예외일 수 없고 특히나 외산 장비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보안 위협 역시 가중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래 네트워크 미래 인터넷]<18>네트워크 주권](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2/11/22/355994_20121122103332_443_0001.jpg)
세계 네트워크 장비 시장은 글로벌 톱4 기업이 60% 이상을 차지한다. 국내의 경우 기간망을 돌리는 백본 장비는 대부분 외산이고 유선 가입자망과 이동통신망 장비 일부에서 국내 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그나마도 공공시장에서는 시장 점유율이 10%를 밑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 통신망을 자랑하지만 외산 장비에 대한 높은 의존도로 정작 국내 네트워크 장비 산업은 동반성장 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국방망이나 재난망 같이 국가 보안과 직결되는 분야를 포함해 정부와 기업의 모든 기밀이 외산 장비를 통해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공공기관의 국산화 장비 도입율이 저조한 것에는 먼저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국산 솔루션으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한 영역에서도 국산 장비를 고려치 않고 고사양의 외산 장비만 고집하는 구매 관행 때문이다. 하나의 외산 브랜드를 유통하려면 다른 브랜드는 취급할 수 없는 SI/NI 업체의 비정상적 생태계, 이들에 대한 의존 관계가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글로벌 대기업의 마케팅 능력과 담당자 전문성 부족이 결합된 결과다.
실제 2010년 지경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공공기관의 장비구매 제안요청서 가운데 25%가 특정업체에 유리한 규격을 명시하는 등 발주 시 외국업체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으로 나타나 국산장비에 대한 직접적 역차별이 존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2년 방통위 조사에서도 국산 장비업체의 평균 유지보수 요율은 납품가대비 1.2%로, 평균 5%에 달하는 외산 업체들과 현격한 격차를 드러냈다. 또 무상 유지보수 기간도 외산업체와 비교해 2배 이상 달해 국산 장비업체들의 이중고가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구매 관행과 유지보수 요율의 문제는 국산 네트워크장비의 경쟁력과 국산화 문제와 직결되는데, 결국 국내업체의 R&D 재투자 여력을 감소시켜 장기적으로 경쟁력 저하를 초래하고 외산 장비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정부에서 실태조사 결과와 가이드라인 등을 발표하고 있지만 우정사업본부, 한국전력공사, 가스공사 등 일부 기관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실천이 미미하다.
최근 국군기무사령부 대규모 통합망 구축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알카텔루슨트와 시스코 장비를 제안한 통신사가 최종 선정됐다는 소식과 함께 방통위가 지난 3년간 구매한 네트워크 장비 239건 중 국산은 단 1건으로 조사됐다는 국감 발표 자료는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 네트워크 주권의 현 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인 것 같아 씁쓸하다.
비옥한 내수 시장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대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장악하는 힘과 속도는 놀랍기 그지없다. 이런 게임의 법칙 안에서 상대적으로 R&D역량과 자금력이 취약한 국내 중소중견 통신장비 기업이 이들과 벌일 전쟁은 그리 희망적이지만은 않다.
2010년을 기준으로 외산 네트워크 장비 수입은 14억 달러 규모, 국산 장비 수출은 15억 달러 규모, 국내 생산 규모는 4조원에 달했다. 이에 따른 일자리 창출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경쟁력 있는 자국 내 네트워크 통신장비 기업과 전문가가 모두 다 사라진 후, 누가 국내 네트워크 인프라를 책임지고 통제하며 정보 전쟁에서 주권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지, 그런 상황이 오면 우리가 지불해야 할 경제적 비용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