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부회장으로 전격 승진했다. 1991년 삼성전자 부장으로 입사한 지 21년 만에 부회장 반열에 오른 것.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 일환이면서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변화를 고려한 전진 배치다.
이 사장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남으로 2007년 삼성전자 전무로 올라 글로벌 경영에 한 축을 담당해왔다. 최근 2년간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아 삼성전자의 경영 전반을 지원해 창립 이래 최대 성과를 올렸다. 그동안 삼성은 스마트폰, TV,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주력 사업이 세계 경제 위기 속에서 글로벌 1위로 자리매김했다.
삼성은 이 사장이 경쟁·협력사 관계 조정, 고객사 유대관계 강화에 탁월한 역량을 보였다고 승진 배경을 밝혔다. 이 사장은 삼성이 애플과 특허 전쟁을 벌일 때도 팀 쿡 애플 사장을 직접 만나 협력을 논의하는 주요 통로로 주목 받았다. 애플과 특허전이 사실상 마무리단계에 이른 만큼 양사가 협력과 경쟁의 새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가 모아진다.
이 사장의 부회장 내정으로 이건희 회장을 잇는 경영권 승계 여부도 관심사다. 삼성은 이번 정기 사장단 인사에서 최지성 부회장의 공백을 메울 DMC 부문장을 따로 두지 않았다. 이 사장이 윤부근, 신종균 `투톱`의 협력을 이끌어낼 적임자라는 판단에서다. 그룹 핵심사업의 조율을 맡겼다.
당초 재계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이 사장의 부회장 승진이 예상보다 늦춰지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있었다. 대선 후보들이 경제민주화를 내세우면서 강도 높은 재벌개혁에 나설 것을 고려한 것이다. 삼성은 정치권의 압박보다 변화와 미래 성장을 이끌어갈 세대교체에 무게를 뒀다.
삼성은 이 회장이 주2회, 연 100일 이상을 해외 출장으로 보내는 등 경영에 집중해왔다고 밝혔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여전히 경영 일선에서 뛰기 때문에 경영권 승계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부회장으로 승진한 만큼 최고 경영자의 눈으로 더 깊고, 더 넓게 경영 전반을 살필 것”이라고 말했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