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데이, 발렌타인데이만 챙기지 말고 블랙프라이데이도 수입해라.”
`블랙프라이데이` 기간 중 미국에서 갤럭시S3를 6만원에 판다는 소식에 분노(?)한 한 네티즌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다. 그 발상에 웃음이 절로 난다. 우리 전자업체가 우리나라를 비롯해 다른 나라에서 이익을 챙겨 미국에 죄다 퍼준다는 댓글도 보인다. 꼭 맞는 말은 아니지만 이 역시 재밌다. 모두가 다양한 제품을 헐값에 구입할 수 있는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 풍습이 부러워서 하는 볼멘소리일 게다.
알려진 것처럼 블랙프라이데이는 11월 마지막 목요일인 추수감사절 다음날로, 연중 최대 쇼핑이 이뤄지는 날이다. 구매자 입장에서는 원하는 상품을 일년 중 가장 싸게 구입할 수 있다. 상점주 입장에선 연중 최대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래서 블랙(흑자)이다.
블랙프라이데이 세일기회를 놓친 이들을 위한 월요일 온라인 쇼핑몰 세일행사 `사이버먼데이`도 있다. 하루짜리 반짝세일이던 블랙프라이데이는 해가 거듭되며 크리스마스까지 이어지는 4주간의 세일시즌으로 확대됐다. 앞뒤로 날을 더 붙여 그 기간도 최장 60일까지 길어지는 모양새다.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하다. 현지에서 삼성전자가 9일간의 블랙프라이데이 주간에 TV 120만대를 팔았다는 통계가 나왔다. 하루에 13만대 꼴이다. 그러니 블랙프라이데이 쇼핑시즌에만 일년 판매량의 20%를 소화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제격인 비디오 게임기도 블랙프라이데이 시즌 7일간 266만대나 팔렸다.
우리의 시샘을 돋우는 건 터무니없다 싶을 만큼 싼 가격이다. 비지오가 이번 쇼핑시즌을 겨냥해 내놓은 60인치 LED TV는 688달러다. 24~26인치대 TV 가격은 100달러 미만이니 우리 돈으로 1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비디오 게임기 X박스360의 판매가격도 99달러였다. 인터넷을 통해 이런 소식을 접한 우리는 속이 편할 리 없다.
미국에만 주어진 특혜를 눈뜨고만 볼 수 없다. 그래서 나온 게 구매대행 서비스다. 수수료와 배송료가 들어도 그 특권을 함께 누리고 싶은 욕심에서 이 서비스를 이용한다. 국내 한 해외배송 대행업체는 올 블랙프라이데이 시즌 첫 주만 약 3만건의 구매대행 서비스를 처리했다. 새 풍속도다.
운 좋게 또 발 빠르게 준비해 국경 밖에서 미국인의 특혜를 맛본 사람일지라도 배송 위험성 또는 비싼 배송비 때문에 TV같은 대형 제품에 쉬 도전을 못하니 속이 탄다. 미국 블랙프라이데이뿐인가. 영국이나 호주의 박싱데이(Boxing Day), 중국 춘절(春節) 등도 있다. 우리도 한가위와 설이 있지만 너무 짧다. 블랙프라이데이를 수입하라고 아우성치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세계 17위권 관광 선진국이다. 지난해 980만명의 외국인이 우리나라를 찾았다. 올해 1120만명으로 추산된다. 관광 대국 스위스(30위·850만명), 일본(39위·580만명), 호주(42위·620만명)보다도 훨씬 많다. 관광수입으론 이들 국가에 뒤진다. 관광객의 지갑을 열게 할 방법으로 우리도 대대적인 연말 쇼핑시즌을 도입하는 건 어떨까. 그것도 화장품이나 김보다도 단가가 높은 전자제품으로 말이다.
말처럼 쉽지 않다. 미국처럼 세계 시장을 들었다 놓았다할만한 시장규모도 우리는 갖추지 못했고, 전자업체가 제조뿐 아니라 유통까지 하는 우리나라만의 사업구조적 제약도 있다. 그래도 해마다 십수만명이 블랙프라이데이 시즌을 기다리며 구매대행 서비스를 이용하는 현상을 고려하면 한번 해볼 만한 시도가 아닐까. 블랙프라이데이를 수입하자는 목소리는 내년에 더 커질 것이다. 그 의견엔 나도 찬성이다.
최정훈 성장산업총괄 부국장 jh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