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IT CEO]구기도 아하정보통신 대표

세계 전자칠판 시장 규모는 2조 원이 약간 넘는다. 이중 70%를 캐나다 스마트와 영국 프로메시안이 차지하고 있다. 한국 업체 점유율은 5%가 안 된다. 하지만 몇 년 후면 사정이 달라진다. 아하정보통신(대표 구기도)이 주인공이다. 경기도 김포에 본사가 있는 이 회사는 세계 전자칠판 시장을 뒤흔들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4~5년 후 세계 1위 전자칠판업체로 우뚝 설 계획이다. 지난 9월말 세계 처음 84인치 발광다이오드(LED) 전자칠판을 32개국에 동시 출시한 것은 그 일환이다. 800만 화소의 차세대 패널과 시력 저하 방지용 강화 유리 채택 등 여러 혁신적 기능과 부품으로 세계 시장에서 큰 호응을 받고 있다. 국내 시장은 몇 년 전부터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아하정보통신은 구기도 대표가 1995년 설립했다. 처음엔 멀티스쿨앤넷이란 이름을 쓰다 2001년 현재의 아하정보통신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구 대표는 원래 잘 나가는 대기업 샐러리맨이었다. 그야말로 열정적으로 일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 운동을 하고 가장 먼저 회사에 출근했다. 밤 12시까지 일하는 것이 예사였다. 토요일, 일요일도 없었다. 당연히 그는 동기 중에서 군계일학이었다. 대리로 가장 먼저 승진했다. 팀장도 가장 먼저 달았다. 회사가 부장 직급을 없애고 팀장제를 도입했는데 몇몇 부장들을 제치고 팀장이 됐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다. 잘 나가는 그를 사람들은 가만두지 않았다. 누군가 그를 모함하고 시기했다. 결국 그는 대기업을 나와야했다. 노래방 기기로 유명한 한 중소기업에 들어갔다.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고 했던가. 그는 여기서도 빛났다. 노래에 어학까지 배울 수 있는 새로운 기기를 개발해 회사 성장에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회사 오너 철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너는 다단계 판매로 매출을 늘리려 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했다. 그는 32살 한창 나이에 월급쟁이를 벗어던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그 앞에 엄청난 시련이 기다리고 있는 줄을. 변변한 준비도 없이 험난한 창업전선에 뛰어들었음에도 그를 따르던 부하 직원 82명이 따라 나왔다. 1995년 멀티스쿨앤넷 이라는 회사를 차렸다. CCTV와 원격 관찰 시스템을 이용한 멀티미디어 교육장비를 유치원에 공급하는 회사였다. 처음 2년간은 잘나갔다. 하지만 그는 이내 무일푼이 됐다. 누군가 제품을 몽땅 훔쳐갔기 때문이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도둑을 잡지 못했다.

사업이 안돼서 망한 것도 아니고 도둑맞아 그렇게 되니 기가 막혔다.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감을 처음으로 느꼈다. 회사가 망하니 모두가 변했다. 친구도, 친척도 그를 멀리하고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가지고 있던 전 재산인 아파트 두 채를 팔아 우선 직원들 밀린 월급과 퇴직금 먼저 줬다. 그러고 나니 수중에 달랑 5천만 원만 남았다. 문제는 채권단이었다. 아직도 10억 이상의 빚을 갚아야 했다. 그는 채권단을 설득했다. “지금 5천만 원만 받겠습니까, 아니면 나중에 제가 많이 벌어 갚을 테니 그때 받겠습니까. 하니 모두가 후자를 택했다. 고마웠다. 구 대표는 5천만 원을 씨드머니로 이를 악물고 재기에 나섰다. 잠잘 집이 없어 사무실에서 자고 먹는 걸 해결했다. 직원은 부인과 구 대표 단 둘 뿐이었다. 유치원생 아들을 트럭에 태워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멀티미디어 교육 시스템을 설치했다. 포항에서 사흘간 잠도 안자고 일하고 바로 목포에가 일 한 후 다시 포항에서 마무리를 한 적도 있었다. 구 대표는 “그때는 하도 잠을 못자 액셀러레이터 밝을 힘도 없었다”면서 “(통신시스템을 설치하기 위해) 사무실 천정에 올라가 보지 않은 사람은 그 어려움을 모른다. 하지만 당시 경험 때문에 현장에 나간 직원들이 지금도 나한테 꼼짝 못한다”며 웃었다. 당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로 전화 빚 독촉에 혹독히 시달린 구 대표는 “전화기 벨을 켜 놓고 전화 받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뼈저리게 경험했다”면서 “이 때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큰 어려움이 닥쳐와도 두렵지 않다”고 강조했다. 고객과의 약속을 철저히 지키고 밤잠을 안자고 일한 까닭에 그는 몇 년 만에 그는 10억 이상의 빚을 모두 갚았다. 빚을 갚고 나니 “내 제품을 만들어 해외 시장을 장악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설립한 회사가 아하정보통신이다. 구 대표는 설립 때부터 시장이 좁은 국내보다 해외를 정조준했다. 아하 수출액은 매년 꾸준히 늘어 2009년 32억 3000만원에서 2010년 38억8000만원, 지난해에는 156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 내년에는 러시아 수출 호조 등으로 500억 원이 넘을 전망이다. 공장은 국내에 3곳, 중국에 1곳을 두고 있는데 최근 카자흐스탄에도 마련했다. 아하가 해외 시장에서 선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구 대표 자신이 해외 영업사원이 되어 발로 뛰기 때문이다. 구 대표가 해외전시회에 처음 참가한 것은 2009년이다. 원래 해외 전시회는 바이어를 처음 만난 후 3년은 돼야 어느 정도 규모 있는 거래로 이어진다. 구 대표는 “지난 3년여간 열심히 해외 전시회를 돌아다닌 효과가 이제 막 나고 있다”면서 “1년에 25개 해외전시회를 참가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대표가 직접 참가해 해외전시회를 챙기다보니 직원들도 더 열심이다. 현장에서 결정을 바로 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구 대표의 세 번째 성공 요인은 기술 중시다. 전자칠판을 하기전 아하는 전자교탁을 대만에서 수입해 판매했다. 하지만 기술독립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구 대표는 이내 대만 제품보다 기능이 훨씬 우수한 세계최고 수준 전자교탁을 2002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판서가 가능하고 강의를 녹화한 소프트웨어가 들어간 이 전자교탁을 보고 대만업체들은 깜짝 놀랐다. 이어 4년 뒤인 2006년에는 전자유도방식 터치센서 원천기술을 일본, 대만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개발했다. 이 기술은 2007년 신기술인증(NEP)에 이어 2009년 신기술 실용화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2007년에는 광터치센서(옵티컬 터치 센서) 원천 기술을 세계 5번째로 개발하는 성과도 거뒀다. 아하는 2008년 수출유망중소기업에 선정되는 등 국내 우수 중소기업에 주는 웬만한 상은 다 받았다. 구 대표는 “전자칠판 핵심부품인 패널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강이고 센서 등 핵심 기술도 우리가 세계최고여서 전자칠판 분야에서 우리가 세계 1위에 오르는 건 시간문제”라면서 “하지만 당장 외국계 세계 1, 2위 업체와 경쟁하려면 자금이 필요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오는 2014년에 상장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방은주기자 ejb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