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다섯 가지 기본 감각기관으로 주위 환경을 인식한다. 이 중에서 시각과 청각, 촉각은 그 기능을 모방한 인공 측정기기가 개발됐다. 인간의 눈처럼 사물을 인식해 담아내는 카메라, 소리를 듣고 저장·재생할 수 있는 마이크로폰, 접촉에 반응하는 터치스크린, 패드 등이 그것이다.
감각을 모방한 기술 및 기기가 한 곳에 집적되면 스마트폰, TV, 전화기 등 근현대 인간 생활에 혁신을 가져 온 편리한 기기로 재탄생한다.
시각·청각·촉각과 달리 후각과 미각의 경우 현재까지 이를 똑같이 모방한 기기를 만드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이유는 사람의 후각과 미각의 작동 원리 때문이다.
인간의 코에는 특정 냄새 분자를 인식하는 `후각 수용체`라는 단백질 분자가 존재한다. 후각 수용체 단백질의 인식 능력은 수 나노미터의 크기의 개별 단백질 분자 모양과 관련돼 있다. 현재 기술로는 수 나노미터 크기의 인식 센서를 만들 수 없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과학기술계를 중심으로 물질을 나노미터 크기의 정밀도로 조절하는 연구가 활발하다. 탄소 원자를 수 나노미터 크기의 튜브 형태로 만든 `탄소나노튜브`가 그 사례다. 탄소나노튜브는 우수한 반도체 물질 특성을 나타내 고성능 전자회로나 고감도 센서를 만드는 재료로 활용 가능하다.
지난 18일 재료연구소에 열린 `소재융합 정기 세미나`에서 홍승훈 서울대 교수(물리학과·생물물리학과)는 `후각 수용체 단백질`을 `탄소나노튜브로 만든 전자회로`와 결합해 인공코를 만든 연구를 소개했다. 이 연구는 박태현 서울대 화학생물공학과 교수 연구실과 공동으로 추진한 바이오소재 융합 연구다.
홍 교수는 “박 교수 연구실에서 후각 수용체 단백질을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기술을 개발했고, 우리 연구실은 이 단백질을 탄소나노튜브 전자회로와 결합해 냄새를 인식하는 인공코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홍 교수 연구실은 이 인공코를 이용해 살구 향이나 우유의 썩은 냄새 등을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또 유사 원리를 미각에 적용해 인간이 느끼는 `쓴맛`을 그대로 측정할 수 있는 인공 미각을 개발했다.
홍 교수는 “세계 최초로 인간의 후각과 미각을 그대로 모방하는 기기를 개발했다는 점에서 과학적 의의가 크다”며 “장차 식품안전, 의료진단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 가능하다”고 말했다.
인류는 시각·청각·촉각을 모방해 스마트폰이나 TV와 같은 기기를 개발했다. 따라서 후각이나 미각을 모방한 다양한 측정기술은 향후 후각과 미각에 관한 다양한 응용 기기의 개발을 촉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창원=임동식기자 dsl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