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별력 낮아진 발전정비적격사 설비 안전은?

발전공기업의 정비적격업체 제도가 변별력을 잃고 있다. 적격업체 승인 협력사 수가 수백개에 달하면서 옥석을 가리겠다던 당초 취지가 희미해졌다는 지적이다. 업체 난립으로 발전설비 안정성에도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27일 발전업계에 따르면 발전소 관련 공사 및 자재구매 입찰에서 정비적격업체 자격이 별다른 이점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해당 자격을 갖고 있는 회사들이 분야별로 수십개에 달하고 신규로 자격을 획득하는 회사들로 계속해서 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 자격을 보유한 협력사들은 한국수력원자력이 600개 이상, 나머지 석탄발전공기업 5개사가 각각 400∼500여개로 추산된다.

한 발전협력사 관계자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발전소 제어·감시 부문 입찰이 나오면 2∼3개의 회사가 경쟁을 했지만 지금은 하나의 입찰에 15개 이상의 회사가 경쟁을 하고 있다”며 “적격업체가 1차 필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비적격업체의 수가 늘어난 데는 발전공기업들이 적격업체 기준을 낮춘 것이 이유다. 최근에는 적격업체 심사 문턱을 낮추는 것과 함께 입찰 자격요건에 적격업체 기준이 포함되는 사례도 줄고 있다. 정부의 동방성장 및 중소기업 육성 정책에 따라 보다 많은 중소기업에게 발전소 정비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발전공기업 관계자는 “설비의 품질관리와 입찰 사전심사의 비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한 적격업체 제도가 중소기업 시장진입 장벽으로 지적되면서 조금씩 기준을 낮추고 있다”며 “설비 안전과 직결된 곳은 적격업체제도와 국가인증을 토대로 입찰을 계속하겠지만 일반 밸브와 같은 비중요 부품 등은 계속해서 진입기준을 완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기술진입 문턱이 낮아진 만큼 발전설비 가동의 안정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한수원은 최근 같은 내용의 기술용역 결과보고서를 작성하고 입찰 금액을 미리 가르쳐주는 방식으로 담합을 한 2개 협력사를 모두 적격업체로 선정해 감사원에 적발됐다. 발전사들은 중요설비에 대해서는 적정 적격심사 기준을 유지한다는 입장이지만 협력사 일각에서는 적격업체가 경쟁이 심해지면 입찰이 가격경쟁 양상으로 갈 수밖에 없고 일반 장비를 교체하는 경상정비도 발전소 가동을 중지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지적한다.

협력사들은 적격업체의 변별력이 떨어지면서 자격 획득에 따른 이점이 사실상 없다고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신규 적격업체는 어렵게 자격을 획득했지만 실제 입찰에 따른 매출증가 효과가 없고 기존 적격업체는 입찰자격을 갖는 회사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발전협력사 관계자는 “지금의 정비적격업체 제도는 사실상 영향력이 유명무실한 상태”라며 “적격심사는 적어도 품질 책임을 보장하는 수준으로 유지하고 주요 공사에 대해선 별도의 우수 협력사 자격제도를 두는 등의 협력사 관리에 대한 제도 운영의 묘를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