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마중물

마중물은 펌프로 지하수를 끌어올릴 때 처음에 펌프에 넣는 한 바가지의 물을 뜻한다.

30여년 전만 해도 많은 가구가 집 마당에 있는 수동식 펌프에 마중물을 붓고 손잡이를 상하로 움직이면서 압력을 이용해 땅속 관에 흐르는 지하수를 끌어올려 사용했다.

우리 벤처기업 생태계에 자주 언급되는 것이 마중물이다. 자체적으로 성장이 힘든 작은 기업군에 한 바가지의 물을 보태 그들이 발전할 수 있는 선순환 고리를 만들자는 접근이다.

현재 우리 경제가 겪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양극화`다. 삼성과 현대차는 잘 나간다는 데 실제 다수의 기업은 한해 한해가 어렵다는 말을 자주 한다.

창업자는 늘고 벤처기업 수는 조금씩 증가하는데 10여년 전처럼 눈에 띄는 신생 스타 기업을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무한정 중소기업 예산을 늘리는 것만 능사는 아니다. 정부 중소기업 정책이 헛물이 아닌 마중물이 되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같은 예산이라도 더욱 효율적 배분이 이뤄져야 한다.

중소기업 지원 예산은 꾸준히 늘어왔다. 하지만 중소기업 연구개발(R&D) 지원 예산이 핵심 기술이나 제품을 만들지 못했던 것에는 반성이 필요하다.

여러 기업에 사이좋게 나눠준 예산은 사막에 뿌려진 비료처럼 작은 싹도 틔우지 못한 때가 많다. 될성부른 곳에 집중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대기업에 과도한 책임만 강조할 일도 아니다.

대기업이 현금을 쌓아두고도 투자하지 않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어느 분야가 유망하고 성장성이 높다는 것을 정책 당국이 적절히 제시해야 한다. 막연하게 `대기업이 역할을 해 달라` `대기업과 협력업체가 상생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오히려 대기업의 발걸음을 위축시킬 뿐이다. 대기업 투자확대는 중소기업에 또다른 마중물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새로운 정부가 곧 출범한다. 우량 중소기업에 활력이 될 양질의 정책을 마중물로 마련해야 할 것이다.

김승규 전자산업부 차장 se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