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4일 사모펀드(PEF)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가 에스씨디 지분 42.98%를 일본전산 자회사인 일본전산 산쿄(NIDEC SANKYO)에 매각하기 위한 계약을 맺었다고 공시했다. 에스씨디를 설립한 일본전산이 지난 2006년 매각한 지 6년 만이다. 인수가격은 당시 챙겼던 66억원의 7배 수준이다.

기업사냥꾼에 걸려들어 힘든 시기를 겪은 에스씨디에 산업자본이 다시 들어오며 안정화 기반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시련을 이겨내고
사자성어에 `고진감래(苦盡甘來)`란 말이 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다. 에스씨디만큼 이 말이 잘 들어맞는 경우도 없다.
에스씨디는 일본전산이 1987년 한국에 설립한 회사다. 냉장고, 에어컨 등에 들어가는 모터를 비롯한 주요 부품을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납품해오고 있다. 에스씨디 공장이 멈추면 이들 회사의 가전제품 생산도 중단될 정도다.
하지만 일본전산은 2006년 일본전산이 갖고 있던 지분을 매각했다. 주요 고객사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에스씨디의 시련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에스씨디는 매각 이후 코스닥 기업 사냥꾼에 걸려들어 당시 코스닥 사상 최대 횡령사건과 배임사건에 연루, 인수와 매각이 반복됐다. 최대 주주가 계속 바뀌고 한때 주식거래가 정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전산의 예상은 빗나갔다. 일본 가전회사들이 쇠락한 것과 달리 삼성과 LG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들에 주요 부품을 납품하는 에스씨디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보였음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이때 등장한 게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다. 에스씨디의 기업 가치를 알아본 것이다. 2010년 12월 에스씨디는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의 도움으로 거래를 재개하면서 안정화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일본전산 그룹사인 산쿄가 지원군으로 재등장했다. 사모펀드가 아닌 산업자본이 필요한 에스씨디와 에스씨디의 국내 가전회사 공급망을 이용하려는 산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튼튼한 기초체력으로 지속성장
에스씨디는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서도 매년 성장했다. 매출 추이를 보면 2008년 371억원에 이어 2009년 439억원, 2010년 591억원, 2011년 674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803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산돼 5년 만에 매출이 2배 이상 늘었다.
회사 관계자는 “횡령으로 인한 재정문제도 다 해소하고 2011년부터 흑자로 전환했다”며 “정년 퇴직자도 해마다 발생하는 등 평균 근속연수만 16~17년”이라고 설명했다.
기초체력이 튼튼했기 때문이다. 시련의 과정에서 자칫 회사 성장동력마저 잃을 수 있었지만 이겨낸 이유다. 일본전산이 큰 돈을 들여가며 에스씨디를 재인수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기업사냥꾼이 노린 것도 이를 알아본 것이다.
이는 기업성과에서도 잘 나타난다. 에스씨디는 냉장고용 냉매밸브 세계시장의 50% 정도를 차지하며 1위를 달리고 있다. 국내시장 점유율도 98%에 이른다. 제빙기(아이스메이커), 온도제어장치(댐퍼)는 국내시장의 80%, 73%를 각각 점유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일본에 이어 2위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냉매밸브 수요의 90% 이상을 에스씨디가 공급하고 만도와 경동도 에스씨디 것을 사용한다.
◇R&D 강화와 해외시장 진출로 재도약 기틀 마련
에스씨디는 산업자본 투입으로 회생 발판을 마련하는 한편 재도약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2014년에는 매출 목표를 1000억원으로 잡았다. 2018년에는 2000억원이다. 기존 성장세를 감안하면 달성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를 위해 R&D를 강화하기로 했다. 에스씨디는 기존 공급 부품업체와 달리 새로운 기능을 갖춘 부품을 선보인다는 전략을 세웠다. 내년에는 삼성과 LG 에어컨 신규 모델용 브러시가 없는(BLDC) 모터를 우선 개발해 경쟁사보다 우위를 점한다는 구상이다.
이와 함께 선행 개발체제 구축으로 미래 성장 아이템을 준비하기로 했다. 완성품 업체에서 요청이 올 때만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개선된 부품을 개발해 제안하는 선행개발 방식이다. 이를 위해 개발 그룹을 사업별로 나눠 조직했다. 품목도 기존 부품 외 비데와 세탁기로 늘릴 예정이다. 자동차 분야도 검토 중이다.
연구비도 크게 늘렸다. 2009년 3억5000만원이던 연구개발비를 지난해 5배가 넘는 18억3000만원으로 끌어올렸다. 올해는 20억원을 초과할 전망이다.
에스씨디는 해외 진출을 위해 산쿄의 전 세계 10여개 네트워크를 활용하기로 했다. 품질, 가격 경쟁력을 갖추면 유사 부품 생산라인을 해외서 갖고 올 수 있어 국내 생산규모 확대도 예상된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삼성, LG 현지공장 협력을 강화하는 등 동반자 관계를 다지고 해외 판매망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며 “이를 통해 국내를 넘어 BLDC모터와 냉매밸브, 제빙기 등 가전부품 분야 선도기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주요 제품]냉매밸브와 BLDC 모터
에스씨디의 대표 제품은 냉매밸브와 브러시가 없는(BLDC) 모터다. 냉매밸브가 주력 제품이라면 BLDC 모터는 신성장동력이다.
냉매밸브는 전 세계 냉장고 두 대 중 한 대는 에스씨디 것을 사용할 정도로 이미 세계적인 제품이다. 냉매밸브는 냉장고의 각 칸에 냉매량을 조절해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기존 솔레노이드 밸브의 단점인 소음과 제어 어려움 등을 개선한 것은 물론이고 크기도 작아졌다.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모두 갖췄다는 평가다.
냉장고, 김치냉장고 등에서 신뢰성 실험한 결과, 적정 온도 -30℃~80℃ 사이로 냉매 공급이 가능하다.
BLDC 모터는 최근 친환경, 고효율 제품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수요가 크게 늘었다. 전력 소비량은 적고 소음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제어가 쉽고 효율이 좋은 DC 모터와 유지보수가 필요 없고 전기적 잡음을 발생하지 않는 유도모터의 장점을 가진 모터에 대한 수요로 등장한 게 BLDC 모터다.
두 모터의 장점을 결합, BLDC 모터는 원하는 속도로 제어할 수 있고 효율이 높아 전기 사용량도 크게 줄어들었다. 제품 수명이 긴 것도 장점이다.
에스씨디는 최근 비수기 매출 확보를 위해 냉장고와 식기세척기, 세탁기용 BLDC 모터를 개발했다. 특히 세탁기용 BLDC 모터는 최근 대우일렉의 벽걸이 드럼세탁기에 적용, 신규시장을 창출하기도 했다.
회사 관계자는 “무엇보다 가장 큰 경쟁력은 사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하나 된 응집력과 25년간 쌓인 품질 노하우”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오길호 에스씨디 사장
“포기하는 순간 끝입니다. 포기하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죠.”
오길호 에스씨디 사장은 위기 속에서도 회사를 지켜낸 인물이다. 특히 2009년 에스씨디를 인수했던 모닝스타얼라이언스로부터 직원들이 사퇴를 종용받았을 때에도 끝까지 함께 하자며 붙잡았다. 25년간 함께 일궈온 회사이기에 직원들을 떠나보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오 사장은 “어려운 시절이 있었지만 우리는 암흑기로 보지 않는다”며 “더 큰 도약을 위한 격동기였을 뿐”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오 사장은 1987년 세진전자가 일본전산과 합작해 회사를 세울 때 창립멤버로 참여했다. 이후 국내외 영업총괄을 하다 최근 일본전산 그룹사인 산쿄가 인수하면서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일본전산이 대주주지만 모든 경영은 오 사장이 직접 한다. 일본전산은 경영 지원과 자문역할만 한다. 오 사장을 신뢰한다는 증거다.
오 사장은 “이제는 안정화를 넘어 성장하고 도약해야 한다”며 청사진을 제시했다. 2014년 매출 1000억원이 목표다.
이를 위해 연구소를 중심으로 선행 개발에 집중하는 한편 해외시장 문을 두드리고 있다. 대주주인 산쿄가 갖고 있고 있는 전 세계 10여개 판매 네트워크를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뿐만 아니라 해외 유사 부품 생산라인을 국내로 이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내비쳤다.
지난 25년간 쌓은 품질 노하우와 경험이면 충분하다는 게 오 사장의 설명이다.
오 사장은 “경쟁력을 갖췄다는 것을 보여주면 인근 부지로 공장 확장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오 사장은 회사 매출 확대나 성장도 중요하지만 정작 가장 관심을 쏟는 건 직원들의 사기다. 예전의 활기찬 기업문화를 되돌려 놓겠다는 의지다.
오 사장은 “2013년은 제2의 창업”이라며 “다음의 25년을 준비하는 해”라고 밝혔다.
유창선기자 yud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