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목적지 없는 대학 정책 의미없다

우리 대학 교육정책의 정확한 목표가 필요한 시점이다. 로마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세네카는 `목적지 없는 배에게는 어떤 바람도 좋은 바람이 아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목표가 모호하니 대학은 순위 경쟁에 내몰린다. 100대 대학 순위 경쟁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모든 대학이 순위 경쟁에 나서는 건 문제가 있다. 세계 최고의 제조업을 가진 독일 대학은 겨우 4개 포함되어 있는 게 세계 100대 대학의 진실이다.

[특별 기고]목적지 없는 대학 정책 의미없다

대학 순위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국제논문 수이어서 이공계 교수에게 국제적인 논문을 요구한다. 창의성 있는 우수한 이공계 고등학생이 의약계 대학으로 진학하는 현실 속에서 이공계 교수는 소속대학 순위를 올리기 위해 논문을 쓴다. 진리 탐구와 인재 양성이 목표인 대학교육의 열정과 책임, 자긍심과 보람은 없어지고 자신의 생존을 위해 논문을 쓴다.

그러다가 연구 결과 조작 사건이 터지면 이공계 교수의 삶은, 특히 승진을 앞둔 젊은 교수의 삶은 피곤해 진다. 졸업생은 취업이 안 되고, 기업은 이공계 대학 졸업생 수준이 형편없다고 아우성이다. 국내외 대학평가의 순위 상승이 목표인 것은 잘못이며 잘못된 목표에 의해 순위 상승에 내몰리는 것, 이것이 우리 이공계 대학의 현실이다.

지금처럼 고등학교 졸업생의 80%가 대학에 진학하고 거의 모든 4년제 대학이 이론 중심의 주입식 교육을 하며 학점만 수료하면 학생을 졸업시키는 식의 수요와 상관없이 석박사를 배출하는 비효율적 대학 체계로는 지속가능한 발전이 불가능하다. 많은 인구와 광대한 면적, 풍부한 천연자원, 끊임없이 유입되는 인적자원을 가진 미국 대학체계를 모방한 지금 우리 대학 체계로는 이를 해결할 수 없다.

19세기 초에 나폴레옹과 비스마르크는 `교육은 국가의 백년대계`라는 생각을 가지고 프랑스와 독일 대학 체계를 혁신했고 초, 중등 교육 체계까지 개편했다. 인구 대비 대학 숫자가 미국에 비해 적은 두 나라 대학은 대부분 국립대학이며 극소수 사립대학이 있다. 국립대학 재정 대부분이 국고 보조와 기부금으로 이루어져 등록금은 거의 없다.

대학 역할구분은 크게 첨단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교수나 연구원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연구중심 대학과 공무원·의사·교사 등 전문 직업인을 양성하는 교육중심 대학, 졸업 후 즉시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기능인을 양성하는 기능중심 대학 등으로 구분한다. 이에 따라 대학과 수여하는 졸업장 이름이 다르다. 대학 역할에 따라 교육 내용과 목표가 다르고 대학과 졸업장 이름만 알아도 교육 내용과 졸업생 수준을 알 수 있다.

입학 정원은 수요에 의해 관리되며 어릴 때부터 학생이 가지고 태어난 재능과 적성을 철저히 파악하고 여러 번의 엄격한 시험을 거쳐 학생에게 대학입학 자격을 부여한다. 대학 입학자격을 얻으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 걱정은 없다.

현재 우리나라의 초중고 교육은 8차 교육과정 개편에 따라 시행되고 있는데 작은 개편까지 포함하면 9년간 11차례 개편이 이뤄졌다. 좀 과장해 보도블록보다 자주 바뀌었다. 게다가 전에는 대학교는 4년제, 전문대학은 2년제 등 이름만 들으면 교육 목표와 교과과정을 알 수 있었던 대학 이름도 모두 `대학`으로 변경돼 도대체 학교 졸업생 수준을 전혀 짐작할 수 없게 돼 버렸다. 명확한 목표도 없이 7차, 8차, 9차 같은 교육 개편을, 대학입시전형을 개편하지 말자. 개편할 때마다 학부모와 학생은 불안하다. `대한민국`이라는 배에 탑승한 우리 국민은 목표 없이 항해하는 데에 불안함과 피곤함을 느낀다.

반값 등록금만 이루어지면 학생과 학부모와 기업이 만족하고 이태백이 없어지고 사오정이 없어진다는 말인가?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겠다`라는 공약보다는 100년 후를 내다보며 `행복 강대국을 구현하는 대학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만들겠다`라는 공약을 듣고 싶다. `우리 대학을 세계 100대 대학에 진입시키자`라는 목표보다는 `등록금 걱정과 취업 걱정이 없는 대학을 만들자`라는 목표를 갖고 싶다.

우리 현실에 적합하지 않으며 학생·학부모·교수·기업·사회 구성원 모두가 피곤한 대학체계를 과감히 버리고 앞으로 4,5년간은 `교육은 국가의 백년대계`라는 것을 명심하면서 비싼 등록금 문제와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며 기업도 환영하는 대학 체계를 진지하게 검토하자. 특히 유럽형 대학체계의 장단점을 철저히 분석해 100년 후 행복강대국이 되기 위한 한국형 대학체계를 국민적 합의를 거쳐 도출하자. 그 후에 한국형 대학체계를 근간으로 제도와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자.

김호성 중앙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 hkim@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