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에너지 소비 증가율의 상승세가 가파르다. 철강·석유화학 등 에너지 다소비업종 의존도가 높고 선진국 대비 낮은 전기요금으로 인해 에너지과소비 풍조가 만연한 탓이다. 반면 에너지 자급률은 여전히 10% 이하다. 세계 10대 다소비국이지만 에너지 자급률은 고작 4%에 불과하다. 자원 불모지나 다름없는 나라가 에너지를 물 쓰듯 사용하는 것이 우리나라 에너지안보의 현주소다. 정부는 이러한 현실을 인식하고 지난 수년간 산업계 온실가스·에너지감축과 해외 자원개발사업을 추진, 에너지안보 자립에 주력해왔다. 산업계는 뼈를 깎는 에너지소비 구조개선 노력을 기울였고 해외자원개발 분야에서는 굵직한 성과들이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지난 수년간 우리나라 에너지체질개선을 위한 기반이 마련됐다면 앞으로는 본격적인 실천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세계 주요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자원 확보에 나섰고 원자력·신재생발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면서 새로운 전략과 대응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차기 정부 출범에 앞서 에너지분야 국정 최우선 과제로 `에너지안보`를 지목하고 정책제언과 산업계 대응방안을 소개하는 `Green Growth 2.0…이젠 에너지안 보다`를 연재한다.
◇에너지안보가 최우선이다
정부는 지난 수년간 녹색성장을 국정 핵심 어젠다로 설정하고 강력히 추진했다. 녹색성장 기본법 제정,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 출범으로 녹색성장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제와 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RPS)를 도입해 산업계 참여를 유도했다. 이와 함께 녹색기후기금(GCF), 글로벌 녹색성장기구(GGGI), 녹색기술센터(GTC-K)를 유치·설립해 녹색성장 강국으로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산업 또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민간투자는 2007년 7000억원에서 2009년 3조, 2011년 4조6500억원으로 급성장했다. 수출액 또한 2007년 7000억원에서 2011년 6조9200억원으로 대폭 늘었다. 신재생에너지 설비규모는 2011년 기준 발전소 2127개소, 설비용량 1GW 시대를 열었다.
취약한 에너지자원 확보를 위한 해외자원개발 활동 역시 활발했다. 아프리카·중남미·중동지역에서 정상급 자원외교가 펼쳐졌다. 석유가스 자주개발률은 2007년 4.2%에서 2011년 13.7%까지 급증했다. 무엇보다 에너지·온실가스라는 단어를 대중에게 인식시킨 것은 성과 중의 성과로 평가받는다. 지난 수년간 녹색성장 기치아래 다양한 성과를 거뒀지만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도 산적해 있다. 우리나라 에너지수급은 여전히 불안한 상태다. 에너지자급률은 2000년 2.8%에서 2011년 3.53%로 미미했다. 최근 약 4%대에 올라선 것이 고작이다.
향후 세계 에너지 수급 판도에 따라 경제 근간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에너지소비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에너지소비 증가율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1.74% 증가했지만 이후 2011년까지 4.07%로 치솟았다. 전체 에너지 수요의 55.5%를 산업계가 차지하고 있어 에너지소비구조를 단기간 내 개선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차기 정부 주요 과제로 에너지안보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손양훈 인천대학교 교수는 “에너지 문제를 변방에 두고 물가, 환경, 복지 등을 먼저 고려한 것이 에너지안보를 위협하므로 에너지 문제가 일자리 창출이나 국방, 안보 등의 국가적 어젠다에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력수급, 자주개발률 제고가 핵심
에너지안보는 경제성장, 복지 등 국정의 모든 분야 핵심 아젠다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하지만 국내 에너지안보는 여전히 취약하다.
지난해 발생한 9.15 정전사태는 우리나라 전력수급 불안정성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 전력 공급 확대가 쉽지 않아 현재 산업체 전력사용 규제와 수요관리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상황이다. 사업장 전력사용 제한에 수천억원의 수요관리 자금이 투입된다. 전력난이 국민 불편을 초래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내 경제성장마저 위협하는 상황이다.
전력과소비 또한 개선되지 않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전력소비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1.7배나 높다. 1인당 전력소비량 역시 일본의 3배, 미국의 2배에 달한다. 전력소비를 부추기는 비정상적인 요금체계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도 쉽게 찾지 못하고 있다. 발전소와 송전선 건설 추진도 민원과 비용 상승으로 난관에 봉착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원전 확대 반대 여론이 부상하면서 원전 도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더욱 어려워졌다. 신재생에너지 보급이 더디고 화석연료 사용이 자유롭지 않은 상황을 고려하면 향후 에너지믹스 구성에 난항이 예상된다. 에너지원 자급률 제고를 위한 자원개발 사업 확대 또한 시급하다.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유사시 국내 도입 가능한 자원 물량이 거의 없고 해외 자원 투자 대비 성공 확률이 매우 낮다는 지적을 감안해야 한다.
◇균형감 있는 에너지 정책 필요
세계 주요 국가들은 에너지안보를 최우선 과제로 정책을 펼치고 있다. 미국은 1차 에너지 수요의 80%를 국내 생산으로 충족하는데 이를 2035년 97%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또한 현재 50% 이상인 석유 수입의존도를 2035년 30% 미만으로 낮추기 위해 자국 내 석유 생산을 확대하고 바이오연료, 천연가스를 수송부문에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중국은 에너지절약·온실가스배출저감에 관한 국가계획에서 2015년까지 에너지원단위를 2010년 대비 16% 감축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총 6억7000만tce를 절감해야 하는 야심찬 목표다. 일정규모 이상 제조업의 부가가치당 에너지소비 또한 2010년 대비 21% 감축하기로 했다. 같은 기간 동안 1차에너지 가운데 천연가스 비중을 현재의 4%에서 8%로 확대하고 비전통가스(CBM)와 셰일가스 생산을 대폭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신재생에너지는 2015년까지 풍력 100GW, 태양광 50GW 설치를 목표로 정했다.
일본은 원전 축소, 신재생에너지확대, 효율 향상으로 압축되는 `혁신적 에너지 환경전략`을 수립했다. 2030년까지 2010년(1.1조kWh) 대비 10%(1100억kWh) 절전하고 신재생에너지 설치량 또한 3배 이상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올해 상반기 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수립할 계획이다. 향후 우리나라 에너지 관련 정책 향방을 가늠할 중요한 지표다.
원자력, 화석에너지, 신재생에너지 도입 비중과 관련해 현실적인 선택이 필요하다. 원자력 발전 비중을 유지 또는 축소,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소폭 확대한다는 기본 방침 아래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증하는 단계다.
전문가들은 국가에너지기본계획 수립 시, 국제정세, 국내 여건 등을 총망라한 종합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가 에너지 정책 변화에 따른 국제 정세를 살피고 이를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영한 전기연구원 연구위원은 “차기 정권이 에너지 안보를 주요 어젠다로 선택할 당위성이 높은 상황”이라며 “저탄소 기본 방향은 계승하되 우리나라 에너지 다소비 산업구조 개선의 실마리가 보일 때까지 한시적으로 속도 및 방법을 조절하고 국가에너지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환원하는 등 정부부처 에너지 조직 확대〃강화하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태진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장은 “에너지안보 확립과 관련해 산업구조 변화가 서비스업 및 고부가가치 사업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가야지 제조업을 줄이는 요인으로 작용하면 안 된다”며 “해외 기업과의 경쟁을 펼칠 수 있도록 업계와의 충분한 논의를 거치고 최근 온실가스 감축에 소극적인 주요국가 동향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동석 부장(팀장) green@etnews.com 윤대원·함봉균·박태준·조정형·최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