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이슈]자기치유소재

화면이 넓은 유리로 덮인 비싼 전화기를 하나씩 들고 다니면서 걱정거리가 생겼다. 바닥에 떨어뜨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한 달 아르바이트 월급 정도는 가볍게 날아가 버린다. 노트북처럼 좀 더 비싼 물건으로 가면 이야기는 더욱 심각해진다.

캡슐에서 액체치료물질이 방출된 금이 간 플라스틱을 복원하는 모습. <벤자민 블레이직 제공>
캡슐에서 액체치료물질이 방출된 금이 간 플라스틱을 복원하는 모습. <벤자민 블레이직 제공>

값비싼 전자기기가 넘쳐나는 세상, 그 기기들에 가해진 충격은 정신적 충격으로 바뀐다. 당신의 정신건강을 위해 `강화ㅇㅇ`들이 등장했다. 강화유리, 강화플라스틱 등 `강화`란 이름을 달고 등장한 소재들이 꽤 있다. 하지만 전자기기는 무겁고, 중력 가속도는 가혹하며 우리는 키가 너무 크다. 따라서 제아무리 강화 제품이라 할지라도 서서 떨어뜨리면 금이 가거나 깨지고 만다. 다른 접근이 필요한 지점이다.

그래서 등장한 게 `자기치유소재(materials that repair themselves)`다. 전문가들은 자기치유소재 상용화가 손에 잡힐 것처럼 가까운 곳까지 왔다고 설명한다. 자기치유소재 논의 기원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소련 과학자가 이 주제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것이 시초다. 이어 자기치유소재의 상용화가 논의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미국 일리노이대 스코트 화이트 교수가 2001년 발표한 연구 결과가 현실적 자기복원소재 논의의 출발점으로 인정된다.

스코트 화이트 교수 연구팀은 플라스틱에 `액체 치료 물질(liquid healing agent)`이 담긴 미세한 캡슐을 주입했다. 플라스틱에 충격을 가해 금이 가게 하면, 캡슐이 터지면서 안에 있던 액체치료물질이 방출된다. 이 물질이 플라스틱에 있는 촉매성분과 접촉하면 본드로 변해 플라스틱의 금을 접착시켜주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플라스틱 회복률이 75%에 달한다고 보고했다.

이 연구진은 최근 반도체 칩 등이 포함된 자기복원 회로기판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역시 미세한 캡슐 속에 특수한 물질을 담는 방식인데, 금이 가면 캡슐에서 액체금속이 방출돼 기판을 복원해준다. 전자기기 표면뿐만 아니라 내부까지도 자기 복원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연구진은 한 발 더 나아가 `오토노믹 머티리얼즈`라는 회사를 차리고 이 기술 상업화에 직접 뛰어들었다. 400만달러 투자도 유치했다. 이 업체는 우선 공기 중에 노출된 철골 구조물의 부식을 복구하는데 캡슐 자기치유소재 기술을 사용하기로 했다. 이를테면 균열이 발생한 녹슨 송유관을 자연 복원시키는 식이다. 이 회사 조 길리아니 대표는 “세계적으로 부식을 방지하는데 들어가는 비용만 연간 5000억달러가 넘는다”고 강조했다.

오토노믹 머티리얼즈는 자동차나 배 등에 이 기술이 광범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30여개 제품을 개발 중이다. 올해 상반기 안에 첫 주문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향후에는 스포츠 용품에도 이 기술을 적용할 계획이다.

캡슐을 이용한 자기치유법은 다양한 응용기술을 낳으며 자기치유 기술의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 방식의 가장 큰 단점은 캡슐이 고갈된다는 점이다. 한 두 번이면 치유가 가능하지만 여러 번 반복되다보면 캡슐이 부족해진다. 또 균열 범위가 넓을 경우에도 캡슐 부족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브리스톨대의 이안 본드와 리처드 트라스크 교수는 `관(管) 시스템`을 연구 중이다. 이 방식은 미세한 유공섬유(빨대처럼 속이 비어있는 섬유)를 통해 캡슐을 플라스틱 전체로 배송하는 방법을 이용한다. 관 시스템을 이용하면 캡슐의 고갈을 걱정할 필요 없이 자기치유를 할 수 있게 된다. 이 밖에 자외선을 쪼여주는 등 다양한 자기치유법들이 개발되고 있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건물 자체의 균열을 자기 치유하는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 대상이 바로 콘크리트라는 것이다. 좀처럼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이 기술을 이용하면 쩍 갈라진 콘크리트벽이라면 몰라도 작은 균열 정도는 다시 달라붙게 만들 수 있다.

네덜란드 델프트기술대(TUDelft)의 헹크 존커와 에릭 슐란젠 박사 연구팀이 이 기술을 개발한 주인공이다. 이들은 일반 콘크리트에 특수한 박테리아와 이 박테리아의 먹이를 혼합했다. 이 박테리아는 물을 만나면 반응해 먹이를 먹고는 석회석을 생성해내는데, 이 석회석이 가느다란 균열이나 작은 구멍을 막아준다고 한다. 이 방법은 화학 소재가 아닌 미생물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자기치유에 새로운 길을 열어준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자기치유소재가 고갈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이안 본드 브리스톨대 교수는 “우리가 지금 자기치유에 사용하고 있는 방법의 공통점은 매우 단순하다는 점”이라며 “우리는 자연이 자기치유에 사용하는 방법을 이제 막 이해하기 시작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

참고자료:B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