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박스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판매량도 늘고 있다. 새로 차를 장만한 사람들에게 블랙박스를 선물하는 사람도 많다. 2011년에 고작 85만 대가 팔렸지만 2012년에는 150만 대 이상이 팔렸다. 블랙박스 업계 관계자들은 제품 성능이 상향평준화되고 가격이 내리면서 올 한해만 200만 대 이상 팔릴 것으로 예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블랙박스가 인기를 얻으면서 인터넷 오픈마켓을 대상으로 ‘묻지마 블랙박스’가 팔리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HD급 화질’, ‘국내 제조’ 등 현란한 광고 문구와 낮은 가격으로 소비자를 현혹하거나 제품 판매 후 업체가 도산해 고장난 블랙박스를 버려야 하는 경우도 생겨난다.
실제 소셜커머스에서 판매되는 제품은 어떨까. 지난 1월 8일부터 11일까지 쿠팡(www.coupang.com)에서 판매된 ‘아이락 1채널 HD급 블랙박스’ 광고 내용을 검증해봤다. 이 딜은 1채널 블랙박스와 8GB 마이크로SD카드 세트를 7만 5,000원에, 16GB 마이크로SD카드 세트를 7만 9,000원에 판매한다(www.coupang.com/deal.pang?coupang=30629573).
◇ 카메라는 HD급, 녹화는 XGA급? = 해당 상품 광고 내용을 보면 ‘HD급 화질’, ‘끊김없는 깨끗한 HD 화면’, ‘150만 화소 고화질 CMOS’ 등 HD급 녹화를 유난히 강조한다. ‘화소수만 많다고 화질이 좋은 것이 아니다’라는 문구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광고 이미지 하단에서 찾은 녹화 해상도는 1024×768화소(XGA)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블랙박스 업계가 이야기하는 ‘HD급’의 정의는 무엇일까. 확인 결과 블랙박스 업체마다 정의가 제각각이었다. 한 업체는 ‘영상 세로 폭이 720픽셀을 넘어서면 HD급으로 본다’고 답했다. 또 다른 업체는 ‘가로·세로 폭을 곱해서 92만 화소를 넘지 않으면 HD급으로 보지 않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은 물론 멕시코와 우리나라 등에서 쓰이는 디지털 방송 표준인 ATSC 규정에 따르면 HDTV 해상도는 1280×720화소를 말한다. 흔히 말하는 풀HD는 1920×1080화소, 일반 TV 해상도는 세로폭이 480픽셀이거나 576픽셀이어야 한다. 해당 규정에 따르면 1024×768화소 블랙박스는 `HD급` 이 아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AV전문가는 “실제로 쓰이는 HD 표준만 해도 1920×1080화소, AVCHD 규격은 1440×1080 화소로 녹화한다. 이처럼 수평 해상도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는 면이 있다. 문제가 된 블랙박스의 수직해상도는 768p로 720p보다 높기 때문에 수평해상도(1024화소)를 따지지 않는다면 HD급이라고 부를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전문가는 “HD급 영상이라고 해서 다 같은 HD급 영상이라고 볼 수 없다. 이 블랙박스는 초당 15프레임으로 동영상을 촬영하는데다 초당 전송률 역시 DVD보다 낮다. 이 때문에 오히려 SD급보다 못한 화질이 나올 수 있다. 따라서 1024×768화소 블랙박스를 HD급이라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다른 AV전문가 역시 “현재 AV업계에서는 1280×720 화소 미만의 해상도에 대해서는 HD급이라고 하지 않는다. 해당 블랙박스의 해상도는 1024×768 화소로 XGA급이다. 하지만 XGA를 HD급 영상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HD급’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과장광고로 보인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4:3 녹화로 인해 가로 화각이 좁아지는 것도 문제다. 한 영상전문가는 “같은 렌즈를 썼다 해도 4:3 화면으로 녹화를 하면 16:9 비율로 녹화할 때보다 가로 화각은 좁아지고 세로 화각이 더 넓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차량용 블랙박스는 세로 화각보다는 오히려 가로화각이 넓어야 사고 전후 자료 수집에 훨씬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오토바이·자전거·보행자나 옆 차선에서 끼어든 차량 때문에 사고가 난 경우 이를 온전히 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 ‘KS 규격 충족한다’? 근거가 없다 = 다음으로 눈길을 끄는 것은 ‘KS규격 16개 항목 중 14개 항목을 충족한다’는 광고문구다. 이 광고문구가 근거로 들고 있는 것은 지난 2012년 11월 27일 소비자시민모임(www.cacpk.org)이 발표한 블랙박스 성능시험 결과다. 광고 문구에서는 소비자시민모임이 시행한 KS 규격 16개 항목 시험 중 15개 항목을 충족한 제품은 3개이며 14개 항목을 충족한 제품은 6개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시민모임이 실제 발표한 자료를 보면 광고 문구와 전혀 딴판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16개 KS 규격 중 15개를 충족한 제품은 3개, 14개를 충족한 제품은 3개다. 뿐만 아니라 이들 6개 제품 중 ‘아이락’은 포함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블랙박스 KS 규격 중 정확히 어떤 규격을 충족했는지에 대한 세부 설명도 없을 뿐더러 이를 확인한 공인된 검사기관에 대한 정보도 없다.
◇ 판매자 폐업하면 “수리 안된다?”= 더 이상한 것은 이 제품을 제조한 업체가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해당 딜 페이지를 보면 ‘현대모비원 1채널 블랙박스’라는 표기가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 회사 웹사이트에 접속해서 살펴본 결과 해당 제품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외견이 흡사한 제품인 ‘아이존 HM-101’이라는 제품은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것일까. 실제로 현대모비원에 전화해 확인한 결과 ‘아이락 블랙박스는 OEM으로 제조된 제품이며 현대모비원은 단순 제조만을 담당했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해당 제품 판매자가 폐업했을 경우 수리나 고객지원이 가능한지 물어보았지만 이 역시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물론 이는 해당 제품 판매자 역시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실제 이 제품 A/S에 대해 책임을 진 업체는 어디일까. 상품 세부 정보에 적힌 전화번호를 바탕으로 검색해보니 서울 용산구의 한 판매업체임을 알 수 있었다. 결국 무상보증 기간이 끝나기 전 이 판매자가 폐업하거나 도산하면 이 제품은 말 그대로 ‘디지털 쓰레기’가 되는 셈이다.
◇ 묻지마 상품, 소셜커머스 고질병? = 물론 소셜커머스가 ‘묻지마 상품’이나 가짜 상품을 판매하다 적발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위메이크프라이스는 지난 2012년 2월에 후쿠시마산 사탕을, 2012년 11월에는 ‘배터리 시간을 늘려준다’는 정체불명 상품을 판매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그루폰 역시 지난 2012년 1월에 ‘배터리 시간을 늘려준다’는 제품을 판매했다 소비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부랴부랴 환불·반품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 1월 8일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유명 소셜커머스 업체를 대상으로 시정명령과 함께 과태료 2,300만원을 부과했다. 일본 유명 미용용품 위조품을 마치 정품인것처럼 속여서 판매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