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훈의 디지털 확대경]소프트파워에 상승 탄력을 주자

주민등록번호 830422-1185600, 주소는 부천시 원미구 상1동 312-3번지. 주민등록상 나이가 올해로 만 서른인 그의 이름은 아기 공룡 둘리다. 매년 어린이날 특선영화에 단골로 출연하는 톱스타였다. 오늘날 캐릭터 펭귄(뽀로로)에 인기서열 1위를 내주긴 했어도 한때 그는 토종 애니메이션 캐릭터 시장을 주름잡으며 수백억원의 로열티를 벌어들었던 세계 유일무이의 공룡 재벌이었다.

[최정훈의 디지털 확대경]소프트파워에 상승 탄력을 주자

최근 30년 사이 다양한 캐릭터가 연이어 등장하며 우리나라 캐릭터 시장도 급성장했다. 하지만 세계 시장 규모에 비하면 1% 남짓에 불과하다. 아톰, 마징가Z, 세일러문, 포켓몬스터, 도라에몽 등 수많은 캐릭터를 가진 일본에 비하면 여전히 관심이 필요한 시장이다.

10여년 전 초등학생 딸아이가 내게 황당한 말을 했다. “나 이담에 커서 일본으로 시집가면 안 돼요.”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녀석이 시집갈 궁리를 하다니, 그것도 일본으로. “도대체 왜” 나의 반문에 딸아이의 답은 간단명료했다. “일본에는 포켓몬이 있으니까.” 한참이나 웃었다. 포켓몬 매력에 푹 빠진 딸 녀석에게 일본은 동경의 대상이었던 거다.

둘리보다도 14년 앞서 등장한 도라에몽도 명예시민증이 있다. 지난 해 일본 가와사키시는 후지코F후지오박물관 개관 1주년인 9월 3일을 기념해 도라에몽 주민표를 발부했다. 도라에몽의 출생일은 100년 후인 2112년 9월 3일이다. 22세기에 태어난 후손이 초등학생 조상을 도우려 시간을 거슬러왔으니 당연한 설정이다.

캐릭터산업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터득한 일본은 정부까지 나서 도라에몽을 글로벌 캐릭터로 키운다. 마케팅에도 적극 활용한다. 5년전 외무성은 도라에몽을 애니메이션 캐릭터 최초의 문화홍보대사로 임명했다. 일본항공(JAL)은 지난 연말부터 비행기 외벽과 좌석 커버에 도라에몽을 그려 넣은 `도라에몽 제트` 항공편을 운행 중이다. 도요타자동차는 CF에 도라에몽을 출연시켜 10개월 사이 일본 내 자동차 판매량을 47% 끌어 올렸다. 9월부터 도라에몽 캐릭터를 랩핑한 전철을 운행 중인 다카오카시는 일반 객차보다 1.7배 많은 승객이 탄다며 콧노래를 부른다. 도라에몽 상품화에 성공한 후지코프로덕션은 지난달 베트남 호치민시에서 현지 발매 20주년 행사를 열었다. 그 자리에 온 베트남 어린이들이 일본어 주제가를 일제히 합창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그런 일본을 긴장시킬만한 라이벌이 등장했다. 바로 `한류`다. 반세기 동안 일본이 쌓아올린 노력을 불과 몇 년 사이 동방신기와 소녀시대가 위협한다. 외면하려 해도 자꾸만 따라하고 싶어지는 게 싸이 말춤이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국가브랜드 순위에서 두 계단 올랐다. 안정적인 경제 기반에 힘입어 국가신용등급이 오른 탓도 있지만 이미지 상승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강남스타일`과 같은 한류 열풍 즉, 소프트파워다. 최근 일본이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경계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 기업의 약진 뒤에는 한류에 매료된 세계 젊은이가 있다고 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군사력이나 경제제재 같은 하드파워나 TV, 휴대폰 등의 하드웨어파워는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 그의 변별력도 예전 같지 않다. 경기상황에 따라 부침도 심하다. 하지만 소프트파워에는 무역장벽도 없다. 주입 후 즉시 효과가 나타나는 피하주사(皮下注射)와 다름없다. 하드파워에 변별력을 더하고 하드파워 이상의 파워를 창출하는 게 소프트파워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우리는 분명 수천 년 전부터 문화선진국이었다. 소프트파워의 위력과 가능성을 확인했으니 이젠 상승 탄력을 더하는 일, 그것이 국가브랜드를 단숨에 끌어올리는 방법이다.

최정훈 성장산업총괄 부국장 jh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