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시장 구조조정에 이은 전력판매 민간시장 개방이 인수위원회의 핫이슈다. 새 정부가 이르면 내년부터 민간 전력판매회사 설립 허용방안을 검토키로 하면서 이를 둘러싼 찬반여론이 뜨겁다. 당장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전기요금을 섣불리 시장에 맡기면 급격한 요금인상과 수급불안 등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이다. 반면 전력은 시장이지 정책이 아니라는 주장도 팽팽하다. 발전부문에 경쟁을 도입하면서 각 발전사들이 설비 효율을 높이고 원료를 보다 적게 구매하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전체적으로 전력생산단가에 효율성을 가져온다는 설명이다. 전력판매 시장 경쟁체제 도입을 둘러싼 논의를 전문가 의견을 통해 심층 분석해 본다.
김영산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전력부족 상황에서 전기를 더 쓰고 덜 쓰고의 판단은 소비자가 내리는 것입니다. 지금은 정부가 규제와 캠페인으로 전력사용량을 조절하고 있지만 시장원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공급과 수요가 맞춰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라도 전력시장 개방을 통해 한국전력 이외에 또 다른 사업자가 등장해 최종적으로 소비자들도 시장에 참여하는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김영산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전력시장 개방이 시장원리에 따른 공급과 수요 조절을 가져올 것으로 진단했다. 소비자들이 전력시장에 참여해 각각의 역할을 하면서 전력부족과 같은 위기상황에 정부의 개입 없이도 수요조절이 자연스럽게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기대다.
김 교수는 전력시장을 규제로만 이끌고 가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은 대용량 수용가에 강제절전과 같은 방법으로 전력수요를 맞춰가고 있지만 언제까지 정부가 일일이 수용가별 절전현황을 감시하고 수용가 별로 각기 다른 제도를 운영할 수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
김 교수는 “전력시장 운영에 있어 결국 경쟁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될 것”이라며 “발전부문에만 도입한 경쟁체제를 판매부문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력시장 개방 시기는 지금을 적기로 봤다. 당장은 전력수급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2014년부터는 공급부족 문제가 조금씩 해결되는 만큼 지금부터 시장 개방을 위한 준비 작업을 서둘러 2014년이나 2015년부터 개방 작업을 시작하면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개방 작업에 있어 극단적인 선택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무리 100% 개방되어 있는 전력시장이라도 생활 필수재라는 특성상 규제를 받을 수밖에 없는 시장인 만큼 우리나라 환경에 맞춰 시장 개방과 함께 일정부분에서 규제가 조화된 모델을 갖춰야 한다는 의견이다.
“개방 과정에서 정부의 어떠한 스케쥴 조정과 조율이 없다면 전력시장 불확실성이 커지게 됩니다. 개방에 있어서도 전체 사회와 산업, 정책 등 시기를 맞추는 정도의 제도는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스마트그리드는 전력시장 개방 시기를 결정하는 데 있어 하나의 해법이다. 김 교수는 전력시장 개방 작업이 스마트그리드 사업의 일정에 맞춰 단계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같은 맥락에서 그가 가장 먼저 시장개방 도입 대상으로 지목한 곳은 대용량 수용가다. 이미 지능형 실시간 계량기가 보급 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용량 수용가 특성상 개수는 적지만 사용전력량이 많아 시장개방에 따른 효과가 상대적으로 큰 것도 지목 이유다. 일반 주택시장의 시장 개방은 스마트그리드가 완전히 구축된 후에 진행해야 개방에 따른 충격이 적을 것으로 내다봤다.
시장 개방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몇몇 제도에 대한 손질과 전기요금 현실화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정산조정계수와 같이 시장개방의 과도기 상황에서 나온 여러 제도들은 소매시장 경쟁과 함께 삭제하거나 수정해야 된다고 말했다. 전기요금현실화는 민간기업의 시장 참여를 위해 필수 요소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지금도 대규모 수용가는 거래소에서 바로 전력을 구매할 수 있는 제도가 있지만 도매가보다 소매가가 싸다 보니 실적은 제로”라며 “정상적인 경제원리가 통하는 시장을 조성하기 위해서도 전력 판매부문을 개방해 경쟁체제를 도입해야 한다”로 말했다.
김태유 서울대학교 기술경영경제정책전공 교수
“전력이 일반 시장재인지 아니면 국민의 안녕을 위한 보편재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전력은 국민에게 기회 균등권을 보장하는 대표적 공공재로 이를 시장에서 경쟁시키겠다는 발상 자체가 모순입니다.”
김태유 서울대학교 기술경영경제정책전공 교수는 전력판매 경쟁체제 도입논란과 관련, 전력은 민영화 작업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제품이라고 잘라 말했다.
“전력판매 완전경쟁체제 주장 배경에는 신자유주의 이론이 있습니다. 공기업의 민영화가 신자유주의에 따른 대표적 사례입니다.”
경쟁체제와 관련해 고려할 두 가지를 제시했다.
김 교수는 “우선은 경쟁의 효율이 생겨야 하고 여러 회사가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한 경쟁을 하고 나쁜 제품은 도태되는 시장이 형성돼야 한다”며 “신제품이 나타나고 신제품에 소비자가 반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과연 전기가 다른 상품처럼 소비자가 새로운 제품에 반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반문했다. 전기는 에디슨이 만들 때부터 전기 그대로이며 사실상 소비자가 선택·반응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당연히 경쟁의 효율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진행된 전력산업 구조조정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했다.
“전력산업 구조조정을 해 왔는데 결과가 어떨까요. 과거 한전은 굴지의 석탄 수입업체 였습니다. 구매력이 있었고 판매자가 팔려고 경쟁했죠. 그런데 5개 발전사로 분리된 뒤 지금은 발전사 끼리 연료를 사려고 경쟁합니다. 연료를 비싸게 사오는 결과가 됐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해외자원 개발을 소홀히 했다는 점이다.
“발전사가 해외자원 개발을 못했다는 것은 치명적입니다. 배경에는 발전사가 해외자원에 투자하면 돈을 회수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재무현황이 나빠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구조조정을 통해 경영평가를 단기적 순이익과 매출로 판단했던 오류 때문이죠.”
여기에 발전 5개사가 석탄, 석유, 가스를 모두 사용하면서 각 사가 차별화된 기술개발도 못했다고 덧붙였다. 원료와 설비가 95%를 차지하는 장치산업에서 이를 절약하는 방법이 없는 구조조정을 진행했다는 분석이다.
김 교수는 “물론 에너지도 언젠가는 민영화를 해야 한다”며 “그 시점은 에너지 수요가 안 늘어나는 시점으로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면 전력수요가 줄 때인데, 아직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경쟁체제와 관련해 가장 신중히 생각할 것은 예비율이다.
“우리 전력예비율은 아슬아슬합니다. 발전사별 경쟁이 낮은 예비율의 주범입니다. 일본이 원전을 멈추고도 버틸 수 있는 것이 바로 30%에 달하는 예비율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 위기가 닥치면 지금의 예비율로 버틸 수 있는지 그는 반문한다. 특히 전력회사를 만들어 시장에서 경쟁하면 그들은 예비율을 가지지 않을뿐더러 책임지고 발전할 이유도 없다고 설명한다.
“민간이 발전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민간은 필요할 때만 발전하고 공공재로서의 전력생산에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이익을 위해 운영비 수준으로 가격을 낮추게 되고 이는 곧 유지보수 부실화 등 파괴적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김 교수는 에너지는 결코 수요와 공급에 기초한 일반 시장원리를 따르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라며 마무리했다.
윤대원·조정형기자 yun197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