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아베노믹스 공포…한국 후방산업 위험해!

일본 소재부품 기업들이 최근 한국과 중국 시장을 무차별적으로 공략한다. 자국 내 제조업 몰락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이나 이른바 `아베노믹스` 등장에 따른 엔저 현상 심화까지 겹쳐 제조업 강국으로 떠오른 우리나라 토종 후방 산업의 입지를 위협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근래 일본 기업들이 엔저를 앞세워 한국 시장을 공격적으로 뚫자 텃밭마저 잃을 위기에 처한 국내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관련기사 3면

첨단 산업 소재인 광학용 폴리에스터(PET) 필름 시장은 이미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일본과 대만 시장에 집중한 미쓰비시·도레이·도요보 등 일본 기업이 한국 시장으로 눈을 돌린 탓이다. 일본과 대만 수요가 급감하자 품질에 가격 인하까지 더해 국내 시장을 공략했다. 90% 가까운 시장 점유율을 자랑했던 국내 필름 업체들은 갑자기 시장을 뺏긴 형국이다. 국내 시장에서 일본 기업들의 점유율이 지난 한 해 동안 12%에서 20%로 급증했다는 업계 추산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엔화 가치가 급락하자 SKC·코오롱인더스트리 등 국내 기업은 특단의 조치를 강구했다. 다음 달 일본 기업들을 반덤핑 혐의로 제소할 계획이다. 일본 기업이 지난해 자국 내 판매가보다 20%나 가격을 낮춰 우리나라 시장에 팔았다는 게 이유다. 엔저 영향을 받게 되면 국내 기업들은 설 자리를 더 잃는다.

대일 의존도를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한 LED 형광체 시장은 더욱 심각하다. 세계 LED 시장이 침체된 가운데 LCD 백라이트유닛용 LED만 수요가 꾸준하다 보니 일본 LED 형광체 기업들의 눈이 한국에 쏠렸다. 국산화에 성공한 일부 중소기업들은 엔화 급락까지 더해 벙어리 냉가슴만 앓는다.

반도체 시장에선 그로기에 몰린 일본 엘피다가 엔저에 힘입어 되살아났다. 애플 모바일D램 구입량이 줄어 직격탄을 맞았으나, 엔저로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되면서 중국 시장을 공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중국 모바일 D램 시장은 SK하이닉스가 최근 역량을 집중하는 곳이다. 우리나라와 일본 메모리 업체들이 가격 경쟁을 벌이면서 ZTE·화웨이 등 중국 업체만 신났다. 업계는 향후 모바일 D램 시장도 출혈 경쟁을 되풀이할까 우려했다. 스마트폰·스마트패드 시장 성장으로 반도체 회사들은 모바일 D램 생산 능력을 대폭 키워놓았기 때문이다.

증권사 한 애널리스트는 “모바일 D램 공급이 수요를 앞지를 수도 있다”며 “이렇게 되면 소강상태인 메모리 치킨게임이 제2 라운드로 접어드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에서도 한국 장비 기업들이 일본업체 공세에 움츠렸다. 중국 내 디스플레이 설비 투자가 잇따르자 일본 장비 기업들이 시장 공략에 집중한 여파다. 여기에 엔화까지 낮아져 BOE의 허페이 8세대(2200×2500㎜) LCD 라인 신규 공장의 초기 물량의 70%가량을 일본 기업이 차지했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기업들이 한국이나 중국 등지에서 사활을 건다”며 “무엇보다 우리나라 소재·부품·장비 등 후방 산업이 당장 타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