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124>정홍식 정통부 차관

1998년 3월은 정부부처 인사(人事)가 꼬리를 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3월 3일 첫 조각, 8일 차관급 인사, 이어 승진과 전보 등 후속인사를 단행했다.

차관급 인사를 발표한 8일은 일요일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날 오전 부처 차관과 주요 외청장 등 차관급 38명의 인사를 단행했다. 김 대통령은 정보통신부 차관에 정홍식 정보통신정책실장(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이사장 역임)을, 과학기술부 차관에 송옥환 과기부 원자력실장(세종대 교수 역임), 산업자원부 차관에 최홍건 특허청장(현 동부발전 회장)을 각각 기용했다,

박지원 청와대 대변인(대통령비서실장, 문화공보부 장관,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역임, 현 국회의원)은 차관 인사 배경에 대해 “내부 승진 위주로 공무원의 사기진작에 역점을 뒀으며, 해당 업무의 전문성과 근무성적, 지역안배는 물론이고 조직 내 신망도를 고려했다”고 인선배경을 설명했다.

차관 인사와 관련한 청와대 K 수석의 증언.

“청와대는 차관 인사와 관련해 세 차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차관 후보자를 2~3배수로 선정했습니다. 이런 인사안은 김 대통령에게 보고됐고 김 대통령은 김중권 비서실장(민주당 대표 역임, 현 변호사)을 통해 DJP 공동정권의 한 축인 김종필 국무총리서리(국무총리, 자민련 총재 역임)와 조정과정을 거쳤습니다.”

청와대는 이 인사안을 가지고 해당 부처 장관들과 협의했다.

차관 인사 작업은 7일 오후에 끝났다. 김 비서실장은 오후 3시 김 대통령에게 이 안을 보고해 최종 재가를 받았다.

배순훈 정보통신부 장관의 회고.

“청와대에서 사전에 의견을 물어왔어요. 나는 정 차관이 청와대에 근무할 때부터 알고 있었어요. 정근모 박사(과학기술처 장관, 명지대 총장 역임, 현 한국전력 고문)와 업무관계로 청와대에 들어가 만나곤 했습니다. 나는 정 차관이 정통부에서 각종 정보통신정책을 총괄해 그가 적임자라고 판단했습니다.”

정홍식 차관의 말.

“청와대에서 발표하기 전 배 장관으로부터 차관 내정 사실을 통보받았습니다.”

김 대통령은 월요일인 9일 오후 청와대 2층 접견실에서 신임 차관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임명장 수여식에는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현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와 김종필 국무총리서리, 신임 차관들 부인이 참석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국민에게 봉사하고 국정에 책임을 지며 관료주의 병폐를 혁파하고 청렴결백한 공무원상을 실천해야 한다”면서 “과거의 악습을 못 버리면 정권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국민으로부터 버림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이어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신임 차관 부부와 일일이 기념촬영을 했다.

이날 오전 10시.

정통부 대회의실에서는 박성득 차관(현 한국해킹보안협회장, KMI이사회 의장)이 퇴임식을 갖고 40여년 외길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박 차관은 기술고시 출신의 첫 차관 발탁이라는 점에서 화제가 됐다. 그는 체신부와 정통부 요직을 두루 역임해 정보통신사(史)의 산증인으로 불렸다. 특히 체신부 통신정책국장 시절 초대 한미통신회담 수석대표를 맡아 미국과 협상 도중 정부훈령을 어기고 미국 측에 회담 결렬을 선언하고 귀국한 일은 당시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대 사건이었다.

박 차관은 퇴임사에서 40여년의 긴 공직생활 여정을 회고하며 “전기통신기본법 제정과 TDX교환기 개발, CDMA 세계 첫 상용화,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 계획 등 그동안 이룩했던 많은 일은 여러분의 협력 덕분”이라며 “당면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정보화와 정보통신산업 육성, 우편금융사업을 조화롭게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차관은 퇴임 후 한국전산원장(현 한국정보사회진흥원)과 전자신문 대표이사 사장, KT 이사회 의장 등을 역임했다.

청와대 일정을 끝낸 정홍식 신임 차관은 이날 정통부 대회의실에서 취임식을 갖고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정 차관은 취임사에서 “어려운 경제 난국을 극복하고 21세기에 대비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정통부를 바라보는 국민의 기대는 매우 크다”며 “그동안 추진해 왔던 정통부의 각종 정책이 알차고 내실 있게 뿌리내리고, 미래를 향한 우리 역량이 결집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정 신임 차관도 한국정보통신사(史)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산증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청와대와 체신부, 정보통신부를 거치는 20여년간 각종 정보통신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한 실무 주역이었다.

그가 권력의 심장부이자 최고 엘리트들의 집합소인 청와대에서 10년간 근무한 일은 일반 행정직 공무원 중에서 최장수 기록에 속한다. 더욱이 그의 승진인사 결재권자가 대통령이라는 점도 남다른 기록이다.

정 차관은 연세대 재학 중 해병대에 자원입대해 월남전에도 참전했다. 대학 3학년 때인 1971년 행정고시 10회에 합격해 국무총리 기획조정실에서 처음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1979년 3월 청와대 정무수석실로 옮겨 10·26사태를 청와대에서 겪었다.

1980년 9월 1일 오전 11시. 전두환 대통령이 11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전 대통령은 3일 대통령 수석비서관 인사를 단행해 경제수석비서관에 김재익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경제과학분과 위원장(1983년 10월 순직)을 임명했다.

김 수석은 경제기획원 기획국장 시절부터 전자식교환기 도입만이 한국 전화 적체를 해소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확신을 갖고 이를 강력히 추진했던 개혁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경제수석이 되자 절대권력자인 전두환 대통령의 신임을 배경으로 통신혁명을 위한 획기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전 대통령은 통신혁명의 강력한 후원자였다. 전 대통령의 김 수석에 대한 신임은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당시 경제수석실은 과학기술, 산업 등 6개 비서관실로 구성됐다. 제5 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청와대 파견 공무원들은 거의 원래 소속 부처로 돌아갔다. 그러나 정 행정관은 김재익 경제수석의 요청에 따라 청와대 경제수석실에 남았다.

정 행정관은 총리실에서 근무할 때에 김재익 당시 경제기획원 기획국장과 인연을 맺었다.

김 수석은 정 행정관에게 “청와대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 남아 같이 일하자”고 말했고 그는 이 요청을 받아들였다.

당시 과학비서관실은 김재익 경제수석 아래 오명 비서관(체신부 장관, 건설교통부 장관, 과기 부총리, 건국대 총장 역임, 현 웅진에너지 폴리실리콘 회장, KAIST 이사장), 홍성원 연구관(대통령 과학기술비서관, KAIST 서울분원장, 시스코시스템즈코리아 회장 역임), 정홍식 행정관 등이 근무했다.

이들의 열정은 새로운 세상을 열게 했다. 이들은 환상적인 팀워크를 자랑하며 한국정보통신사(史)에 이정표(里程標)가 될 굵직굵직한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했다. 한국통신공사(현 KT)와 데이터통신 설립, 전자공업육성계획, 일감 찾아주기 운동, 반도체, TDX, 중형컴퓨터산업 육성정책 등이다.

그는 1987년 9월 서기관 10년 만에 청와대에서 부이사관으로 승진했다.

일반직 고시 출신이 청와대 안에서 비서관급인 부이사관으로 승진한 일은 그가 처음이었다.

그의 승진인사 서류에는 전두환 대통령이 한글로 서명했다. 그는 전산망조정위원회 사무국장을 겸임했다. 이후 오명, 홍성원 비서관이 청와대를 떠나자 그 뒤를 이어 과학기술비서관으로 일했다.

1989년 6월 17일. 그는 청와대 근무 123개월 만에 청와대를 떠나 체신부로 자리를 옮겼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만에 청와대 바깥으로 근무처를 옮긴 것이었다.

정 차관은 당시를 “일생일대의 결단이 필요했다”고 회고했다. 당시 청와대 근무를 마치면 자신이 원하는 부처로 갈 수 있었다.

정 전 차관의 회고록 증언.

“청와대에서 나올 때 내가 원한다면 경제기획원을 비롯해 상공부 등 인기 부처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IT를 선택했고 체신부로 자리를 옮겼다. 그 과정에서 청와대 경호실에 파견나와 잘 알고 지내던 박성득 당시 통신정책국장과 대학 선배이자 고시 동기인 김동선 체신부 서기관(정통부 차관, 방송위 부위원장 역임, 현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이사장)을 비롯한 고시 동기생과 지인들의 의견도 구했다.”

그는 외부 첫 영입 케이스로 체신부로 와 1991년 1월 1일 정보통신국장에 임명됐다.

1994년 12월 체신부가 정보통신부로 확대 개편되자 그는 정보통신정책실장에 임명됐다.

이후 초고속 정보통신 기반 구축 종합 계획과 통신사업 경쟁정책, 정보화촉진기본법, 정보통신산업 발전 종합 대책 등 각종 정책을 총괄해 입안하고 집행했다.

그는 강력한 업무 추진력과 치밀함, 소탈함, 그리고 광폭의 대인관계를 바탕으로 정통부를 일류부처로 탈바꿈하는 일에 앞장섰다. 그의 차관 발탁은 부내에서 “너무도 당연한 인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해 3월 16일 정통부는 후속 인사를 단행했다.

정 차관이 맡고 있던 정보통신정책실장에 안병엽(정통부 장관, 17대 국회의원 역임), 정보화기획실장에 이성해(현 KT 경영고문), 기획관리실장에 김동선(정통부 차관, 방통위 부위원장 역임, 현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이사장), 우정국장에 서영길(현 IGM세계경영연구원장), 정보통신지원국장에 이교용(현 한국우취협회장), 국제협력관에 구영보(현 SK텔레콤 고문), 체신금융국장에 진동수(재경부 차관 역임), 정보기반심의관에 석호익(KT 부회장 역임, 현 통일IT포럼 회장)씨를 임명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전열을 정비한 정통부는 새로운 활력에 넘쳤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