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만의 體認知]<277>헤매야 혜안(慧眼)이 떠오른다.

길을 잃고 헤매는 가운데 생각지도 못한 다른 길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색다른 길은 길을 잃은 덕분에 찾을 수 있는 생각지도 못한 길이다. 세상의 모든 길은 처음부터 그곳에 있지 않았다. 누군가 처음으로 걸어간 길에 족적이 생기고 길이 생긴 것이다. 그 길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걸어갈 것이다. 그러나 이전에 만나보지 못했던 길은 누구도 걸어가지 않은 길을 찾기 위해 헤매는 가운데 발견될 수 있다.

혜안은 헤매는 와중에 어느 순간에 나에게 떠오른다. 혜안이 떠오르는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방황을 하고 방향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혜안은 멍한 시간을 갖고 조용히 사색을 하다가 어느 정도 생각의 방향이 잡히는 순간 나에게로 다가오는 선물이다.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주어진 문제의 해결 대안을 찾아나서는 사람에게 혜성(彗星)처럼 다가오는 혜택(惠澤)이다. 혜안은 하던 일을 잠시 내려놓고 물끄러미 세상을 관조하는 가운데 혜성처럼 다가온다. 집중과 이탈, 긴장과 이완의 리듬이 교차하는 가운데 혜안이 불현 듯 떠오르는 것이다.

`쉬지 않으면 쉬게 된다`는 말처럼 `멍하지 않으면 멍하게 살아간다`. 바쁘게 달려가는 삶을 잠시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고 달려가는 목적지를 되새겨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멈추지 않으면 평생을 멈춤 없이 달려간다. 멍하게 세상을 물끄러미 관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가끔씩 멍하게 지내야 명(明)해진다.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앎은 어둠의 침묵 속에서 잉태되고 탄생된다. 관조하는 시간의 기다림 속에서 미래를 관망하는 혜안과 식견이 탄생된다.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잠시라도 생각의 끈을 놓고 멍하니 있기는 쉽지 않다. 누군가 나를 때려도 내가 모를 정도로 시간과 속도와 효율의 굴레 바퀴에 매몰되어 살아간다. 매몰되기 전에 우선 멍하니 있어 봐야 한다. 그래야 내가 무엇에 매몰되어 가고 있으며 왜 매진하지 못하는지를 알 수 있다. 매몰되기 전에 매진하고 몰입해야 돌진(突進)할 수 있다. 뭔가를 추진(推進)해야 매진(邁進)할 수 있고 매진하는 가운데 몰입(沒入)할 수 있다. 추진 없이 매진 없고, 매진 없이 몰입 없다. 추진하기 않고 매진하지 않으면 자기 생각의 틀에 매몰(埋沒)되기 쉽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