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바보상자`라 불렀다. 방송사가 보낸 영상을 수동적으로 보면서, 생각은 없어지고 시간만 축낸다는 것을 지적하는 뜻에서 주로 사용했다.
최근 TV는 우선 `상자`가 아니다. 브라운관(CRT) TV는 박스 모양을 했지만 지금의 TV는 `판(패널)`에 가깝다. 벽에 거는 그림이나 거울과 흡사한 형태이다. 두께는 계속 얇아지는 추세다. 차세대 TV로 꼽히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TV는 백라이트가 없기 때문에 두께를 4㎜까지 줄였다. 평면이 아닌 아예 오목한 형태의 `휘어진(Curved) TV`까지 연초 선을 보였다.
그렇다면 TV는 바보일까? TV를 바보라 한 것은 수동적 시청 행태에 주목한 표현이다. 그러나 요즘 TV는 많이 똑똑하다. 스마트 기능으로 시청자가 인터넷 검색도 하고 방송사가 보내주는 영상을 전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를 직접 찾아 볼 수 있게 한다. 게임이나 피트니스 코너를 선택해 시청 이외에 다양한 즐길꺼리도 제공한다. 신형 TV는 아예 TV가 이용자에게 직접 콘텐츠를 추천한다. TV 주도권이 방송사에서 시청자로 확실히 옮겨온 만큼 `바보`라는 표현은 요즘 TV에게는 억울한 면이 있다.
우리나라는 명실상부 TV업계 강국이다. 글로벌 1, 2위 제조사를 보유했다. 삼성전자가 잡을 수 없을 것 같던 일본 업체를 누르고 TV시장 1위가 된 게 7년 전이다. `LED-3D-스마트-올쉐어`로 이어지는 새 개념을 선보이며 TV산업을 선도했다. LG전자도 미래형TV로 꼽히는 OLED TV와 초고선명(UHD) TV를 세계 첫 판매한 회사로 업계에 이름을 높였다.
방심은 금물이다. 중국 업체는 커다란 내수시장 규모를 무기로 우리 제품의 특·장점을 빠르게 따라붙고 있다. 일본 기업들도 엔저를 활용해 과거 영광을 재탈환하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여기에 애플처럼 다른 생태계에 있던 기업들도 직간접적인 경쟁자로 부상했다.
지난 수십년간 `바보상자`라 불렸던 TV가 별칭 자체를 바꿔야 할 정도로 변모했다. 앞으로도 기술은 점점 빠르게 진화할 것이다. 우리 TV업계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업계를 리드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없는 이유다.
전자산업부차장·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