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에 잉어 10마리가 살고 있다고 칩시다. 만약 10%를 줄이려면 한마리를 빼서 다른 연못으로 옮기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0마리 모두의 꼬리를 잘라 10%를 줄입니다.”
지난 7일 취임한 정광화 신임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이 미사일의 대부로 불리는 국방과학연구소 출신 정규수 박사의 말을 빌어 `형평만 맞추려 하는 한국식 마인드`를 꼬집으며 내놓은 비유 한토막이다. 형평성도 중요하지만, 모두를 살리는 업무처리와 융통성, 전문성이 더 중요하다는 걸 강조한 얘기다.
정 신임 원장과 정 박사는 서울대를 나온 뒤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함께 물리학을 전공한 부부 해외유치과학자다.
정 신임 원장은 출연연 사상 첫 여성 기관장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지난 2005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을 지냈다. 출연연 기관장으로는 이번이 두 번째다.
정 신임 원장의 첫 번째 지론은 `투명한` 일처리다. 모든 일은 상하 간 협의해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대신 한번 맡긴 일은 믿고 끝까지 밀어준다. 이게 그가 만들어온 리더십이다.
사실 기초과학지원연은 지난해 비리사건에 휘말려 곤혹을 치렀다. 그 때문에 장기간 기관장 공석사태를 겪기도 했다.
“이미 지난해 감사원 감사를 통해 진단이 나왔고, 처방도 시행됐습니다. 지금은 회복기에 어떻게 진입시키는지가 관건입니다. 정부의 예산지원이 재충전을 위한 영양제가 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그래서 고민 중입니다.”
정 신임 원장은 우선 기관 발전방향과 비전부터 전 직원이 공유하도록 할 방침이다. 기관 평가가 끝나는 대로 지역별로 흩어져 있는 분원조직을 일신하고 방향성을 새로 정립한다.
급격한 조직개편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비전 등에 관한 내부 공감대 형성이 우선이라는 판단에서다. 우선 사기진작 및 책임경영 차원에서 권한을 아래로 가능한 이양해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해줄 방침이다.
정 신임 원장은 “과학기술자는 연구를 하고, 행정직은 지원을 하고 공무원은 기술이전과 기획 등 디렉터 역할을 하는 패러다임을 갖춰야 할 때”라며 “모든 R&D가 디자인으로 승부를 걸기 위해선 전문성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말 그대로 기초과학을 지원하는 연구원인 만큼 장비를 갖추고 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특성화된 조직을 분석장비 운용팀 중심으로 새로 짜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독감에 듣는 약이 정상일 땐 독이 되듯 정책도 시의적절해야 한다는 입장도 내놨다. 장비자체 개발과 공동연구를 염두에 둔 얘기다. 남을 베끼던 시대에서 이제 창의적인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때가 됐다는 입장이다.
전문성에 대해 한마디 더 보탰다. “공무원도 전문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2~3년에 한 번씩 보직을 돌릴 것이 아니라, 출연연 젊은 과학자와 공무원을 한조로 묶어 10년이든 20년이든 함께 가도록 한다면 그만큼 시행착오도 줄어들 것이고 더 큰 성과가 나올 것입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