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업이 브랜드 네임을 정할 때에 수십억원이 들었다더라는 이야기가 떠돌면 으레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정도는 나도 지을 수 있어! 나한테 그 돈을 주지!”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이걸 하고 그 돈을 받는다고?` 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들이 많다.
회사 브랜드가 단순히 로고나 상징적 기능만을 한다는 안일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브랜드는 회사가 지켜나가야 할 정체성이며 중요 기조의 표현이다. 정체성이 흔들리면 소비자가 인식하는 회사 이미지가 뿌리째 뽑힐 수도 있다. 그것은 회사의 매출로 직결된다.
쉽게 말해 기업을 `한 사람`으로 보았을 때 `이럴 때는 이게 옳다, 저럴 때는 저게 옳다` 박쥐처럼 마음이 바뀌고 쉽게 신뢰관계를 저버리는 사람에게 누가 정을 붙이고 지속적인 거래를 할 수 있겠는가. 시류를 잘 타서 순간의 이득을 볼 수는 있겠지만 소비자 및 협력사와의 신뢰관계는 깨지고 더 큰 성장을 기대하기가 힘들다.
현대엠엔소프트는 자동차 회사의 자회사로, 자동차에 옵션으로 삽입되는 내비게이션의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다. 이 회사가 장착형 내비게이션과 블랙박스 등을 중심으로 더 큰 변화를 꾀하며 이노디자인의 문을 두드린 것이 작년이었다.
이노는 브랜드 네이밍은 물론이고 제품, UI, GUI, 패키지까지 도맡아 `토털 크리에이티브 솔루션(Total Creative Solution)`을 시작했다. 마치 한 개체의 안드로이드를 만들 듯 뇌를 제외한 팔과 다리, 모세혈관 하나하나와 심장까지 만들어서 제시했다. 업체가 갖고 있던 기술력을 최대한 사용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도록 시각화해 외형과 그 정체성까지 만드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었다.
브랜드에 대한 접근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회사가 만들어진 역사를 짚으며 상징성을 부여할 수 있다. 소비자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차용해 한눈에 들어오게 외형을 만들 수도 있다.
이노는 `MN SOFT`라는 단순하고 평범한 이름에서 조금 순서를 바꿔 `SOFT MAN`이라는 하나의 캐릭터를 만들고, 그 생애를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그렸다. 그의 생애 및 성격이 제품 자체가 되는 시나리오인 셈이다.
이렇듯 제품 및 브랜드에 아이덴티티를 부여하는 것은 흡사 소설가가 등장인물의 살아온 환경과 성격 등을 설정하는 것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배경이 있어야만 당면한 상황(Scene)에서 인물이 어떠한 행동을 하고, 그로 인해 어떤 결과가 발생할지 예상 시나리오도 그려지기 때문이다.
브랜드도 그렇다. 시장 상황과 소비자 심리에 맞춰 브랜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올지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브랜드 아이덴티티(BI), 크게는 코퍼레이트 아이덴티티(CI)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창의력과 판단력, 회사의 비전을 제시하는 능력까지 발휘할 수 있는 디자이너(디자인 회사)를 회사가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BI가 뼛속 깊숙이까지 간직한 생명의 뿌리 즉 DNA라면 제품과 패키지,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브랜드의 팔과 다리, 얼굴이다. BI가 주축이 돼 하나의 통일된 브랜드를 이끌어가는 모든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많은 인력과 시간, 무엇보다 경력이 필요한 일이다.
소비자가 쉽게 지나치는 작은 선과 구멍 하나에서도 디자이너는 브랜드를 표현하기 위한 세심함을 더한다. 무심결에 그것을 본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것이 디테일이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생처럼 겉면에 커다랗게 이름을 박지 않아도 된다. 눈썰미를 지닌 사람이라면 한눈에 보고 `이건 OOO 브랜드에서 나온 상품이구나!`를 알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잘 만들어지고 잘 자란 브랜드의 아우라다.
앞으로 디지털 시장에서는 하드웨어보다도 사용자가 느끼는 제품과의 교감 또는 경험 즉, 소프트웨어가 중요 세일즈 포인트가 될 것이다. MN소프트의 본래 이름에서 멀어지지 않고 그 뜻을 품은 `softman`이라는 브랜드는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익히 알고 있는 격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노는 기술 자체보다 사용자에게 인식되는 브랜드 경험에 중점을 두고 디자인을 풀어나갔다. `소프트맨`은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직감하고 척척 알려주는 `스마트맨`이다. 색색깔의 찰흙을 빚어놓은, 그 유연한 모양으로 어떤 사용자의 요구에도 응답할 수 있을 것이다.
디자인의 궁극적인 목표는 `브랜딩`이다. 디자인은 기업의 상품과 사용자들을 연결하는 고리다. 나아가 고객의 감성을 움직일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 개발로 고객의 기억 또는 가슴속에 자리 잡은 기업의 이름 즉, 브랜드를 강화할 수 있다.
고객은 그들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디자인과 브랜드들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묻기 시작했다. 이제 단일 상품의 성공이나 감동 서비스만으로는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가 없다. 기업은 고객과의 대화로 자신의 의미를 고객 마음에 심어야 한다.
우리는 브랜드가 상대방에게 어떤 가치를 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연인이나 친구의 관계에서 진실성이 통하듯 기업의 브랜드와 고객의 관계는 진정성으로 끈끈하게 유지될 수 있다. 관건은 어떻게 해야 고객을 우리 기업의 편(Fan)으로 만들어 그들의 힘으로 우리 브랜드를 키워가는지다.
애플에는 수많은 팬이 있다. `애플 스타일`에 신뢰를 쌓은 그들은 온라인에서 자체적으로 새로운 아이폰 디자인을 만들어 공유한다. 신제품이 출시되는 날이면 가게 앞에 길게 줄을 지어 기다리며 마치 축제와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그 현장이야말로 바로 애플의 브랜드다. 브랜드는 기업의 정체성과 전문성을 고객에 전달해 신뢰를 얻어낸다. 디자인은 브랜드를 통해 전달되는 그 기업의 상품과 서비스의 의미를 창조한다.
`우리 브랜드는 어떤 전문성을 인정받고 싶은가?` 이것은 브랜드 전략을 수립할 때 첫 번째 질문이어야 한다.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자체 상품으로 세계 시장에 도전하기 위한 해결책은 글로벌라이제이션과 기술, 디자인, 브랜딩으로 압축된다. 이것이 지난 60년간 노동 집약적 발전 과정을 거쳐 성공한 한국의 1% 기업들이 추구하는 창의경영의 답이다.
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
-
김명희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