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계곡(Death Valley)에 빠진 특허(벤처) 구할까.` 허준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특허 출원과 상용화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죽음의 계곡`에 빠진 경우다. 수많은 특허가 그렇다. 기업이 어렵게 개발해 출원·등록에 성공하지만 다음이 막막하다. 시장에서 꽃(상용화)이 피도록 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우선 상용성이 떨어진다. 이른바 `특허를 위한 특허`다. 모 대학 교수는 “대학에서 특허 출원 실적을 논문에 준하게 평가한다”며 “그래서 교수는 웬만한 아이디어를 특허로 낸다”고 비꼬았다. 다른 하나는 자금 부족이다. 스타트업·벤처기업에 해당한다. 창업자금 대부분을 특허 완성(R&D)에 투입한다. 마케팅을 포함해 기술 상용화 자금이 없다. 서주원 이디리서치 사장은 “R&D만으로 시장에 내놓는 제품을 만들 수 없다”며 “상용화를 위해 추가로 개발해야 하는데 중소벤처기업은 소요 자금을 제대로 예상하지 못한다”고 평했다.
기업은 자금을 외부에서 조달한다. 쉽지 않다. `특허`라는 것 자체가 검증되지 않았다. 은행 등 기존 시장에서 조달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발명가·개발자는 잠재성을 강조한다. 재무 전문가 눈에는 `허황된 꿈`이다. 이것이 융자 거부로 이어진다. 어렵게 승인해도 해당 기업이 요구하는 금액과 차이가 크다.
시장 실패 영역이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하는 벤처캐피털에 의존해야 한다. 특허 펀드다. 특허청이 예산을 투입하고 한국벤처투자가 운용해 만드는 특허펀드는 `기술 사업화 펀드`로 불린다. 특허 등 기술이 사회에서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돕는다. 박창교 벤처기업협회 부회장은 “기술 사업화에 막대한 자금이 소요된다. 융자로 한계가 있다”며 “사업화뿐만 아니라 마케팅까지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투자금 활용이 적절하다”고 강조했다. 융자와 달리 투자는 짧게는 3년, 길게는 6~7년을 이용할 수 있다. 기술상용 과정에서 벤처캐피털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다는 측면도 장점이다.
특허 펀드는 궁극적으로 우리나라 벤처생태계 한계인 인수합병(M&A) 시장 활성화에도 기여한다. 기술이 기업가치 전부로 평가되는 초기 벤처가 대표적이다. 특허펀드는 이들 기업 보유 특허 인수 자금 역할을 한다. 이것이 M&A다. 기술 융·복합 속도가 날로 빨라진다. 대기업 단독으로 신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어렵다. 오히려 대기업은 신기술을 외부에서 적극 조달해야 한다. 오픈 이노베이션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주일이 멀다 하고 대기업 M&A 사례가 나오는 이유다. 올해 1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특허펀드는 숨은 기술을 찾아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달 초 특허펀드를 결성하는 박동철 플래티넘기술투자 이사는 “벤처 보유 특허 종류가 워낙 많다. 우리가 찾는 것은 해외에서 단기간에 추격하지 못하는 원천특허”라며 “그런 특허가 사업화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과제도 많다. 허준 연세대 교수는 “미국 기술 선진화 역량 대부분은 대학에서 나온다”며 “대학도 우수 기술 개발에 매진해야겠지만 대기업 등 기술 인수 주체가 더욱 적극적으로 가치를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벤처캐피털은 위험을 부담하려 하지 않는다”며 “기술을 제대로 평가하고 비록 초기 기업이라도 과감히 투자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표】최근 특허펀드 결성 현황
※자료:특허청
김준배기자 j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