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세의 디자인스토리]<13> 한 손(One hand), 다음은?

IT 제품 이용이 늘어나면서 소비자는 그에 따른 불편함과 새로운 욕구도 많아졌다.

예전에 인기가 높았던 미국의 외화 시리즈 `맥가이버`는 수사물의 전형을 파괴한 독특한 드라마다. 범행 동기를 찾아내는 맥가이버의 추리력은 특별히 뛰어나지 않다. 수시로 곤경에 처한다.

[김영세의 디자인스토리]<13> 한 손(One hand), 다음은?

그러나 맥가이버에게는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뛰어난 대처능력이 있다. 일상 속 평범한 물건들도 그의 손만 거치면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것처럼 재해석되고, 그를 곤경에서 구해줄 훌륭한 도구로 재탄생한다. 작은 아이디어도 놀랍게 활용하는 그를 보며 나는 항상 드라마 속 맥가이버가 되어보곤 했다. 사람들의 불편을 해결해 주고 더 나아가 기쁨과 행복을 주는 맥가이버가 되고 싶었다.

`책상 앞에 앉지 않고도 쉽게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는 마우스가 있다면 어떨까?`

`자유로운 동작과 함께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스크린에 직접 글씨까지 쓸 수 있다면?`

프레젠터 `맥가이버(MACGYVER INNO-H2)`는 바로 이런 의문점에서부터 출발했다. 이 제품은 키보드, 레이저 포인터, 무선 마우스를 하나로 합쳐 한 손에 들어오도록 만든 제품이다. 소통의 중요성이 커지고 멀티미디어의 공유가 자유로워진 요즘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프레젠테이션 기회가 주어진다. 이 자리는 자신의 의견을 공식적으로 전달하는 중요한 자리면서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결정적 순간이다. 이때 사람들은 참석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방법을 찾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한다.

맥가이버를 쓰면 키보드를 이용해 발표 자료의 내용을 그 자리에서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다. 동영상 재생, 일시정지, 되감기, 빨리 감기, 정지의 다섯 가지 `핫키`가 있어 발표 중 필요한 화면을 편리하게 찾을 수 있다. 한 가지 제품이 키보드와 레이저포인터, 무선마우스 세 가지 역할을 모두 해냈다. 이 제품은 오래전에 나왔지만, 요즘에 더 각광받는 `잇(it)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사람들은 IT 기기가 더욱 복합적이고 탄력적으로 변화하기 바란다. 하지만 IT 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기계가 필요에 따라 작아진다고 해서 사람의 손가락까지 가늘어질 수는 없다. 기술과 도구가 발달하는 속도에 발맞춰 인간 진화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성형수술로 눈을 세 개로 만든다거나 손가락을 늘리기보다는 기계 디자인을 인간 해부학에 맞추는 것이 현명하다.

`와우펜` 역시 일상 속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이노가 만든 제품 중 하나다. 디자인 작업 시 사용하는 기존 펜마우스는 그 용도가 특정 용도에 한정됐다. 인터넷이나 문서 작업, 게임 등 일반적인 컴퓨터 사용을 위해서는 따로 일반 마우스를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이노는 펜마우스에 일반 마우스의 기능을 결합했다.

와우테크의 와우펜은 평소 펜마우스 사용에 불편을 느꼈던 이노 디자이너들에게도 큰 기쁨을 줬다. 나는 디자이너들에게 `항상 사용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라`고 말을 하곤 하는데, 와우펜은 디자이너가 직접 사용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직장인들이 오랫동안 책상 앞에서 업무를 보느라 생긴 거복목 증후군, 팔목터널 증후군, 소화불량이 생긴다. 이 제품은 불편한 자세를 교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멋지고 편리한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 더욱 심혈을 기울여 개발했다.

2006년 미국 CES에 참여한 개발사의 조병희 사장은 마이크로소프트 직원에게 한 시간가량 제품에 대한 질문 공세를 받았다. 얼마 후 MS는 홈페이지를 통해 “어떤 입력장치보다 다루기가 편리하며 특히 스크롤 휠과 버튼의 위치를 이용자 관점에서 최적화해 피로를 덜게 했다”고 그해 5대 제품 중 하나로 소개했다.

많은 사람들이 작은 불편은 그냥 참고 넘어가려고 한다. 불편함을 많이 이야기하고 바꾸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깐깐하고 괜히 트집이나 잡는 사람으로 생각할까 봐 그러는 모양이다.

하지만 불편함을 해결하고 더욱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든 사람들은 이렇게 깐깐하고 세심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도구의 동물이며, 손으로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면서 뇌 발달을 이루었다는 학설도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금 우리가 불편함을 참도록 스스로를 길들인 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몸에 더욱 편하고 이로운 것을 찾아낸다면 어떨까. 후손은 우리가 꾸역꾸역 못 이겨 하는 일을 지금보다 훨씬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불편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아주 작은 것이라도 놓치지 말고 단서를 잡아보라.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기발한 아이디어가 번쩍 떠오를지 모른다. 사람들에게 행복과 편리를 가져다주거나 인류사에 길이 남을 획기적 발명을 할 수 있을 수도 있다.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한 사람이 여러 개의 디지털 기기를 가지면서 생긴 딜레마를 해결하는 역할이 바로 디자인이다. 사람의 손의 크기는 제한적이다. 모바일기기 대부분이 `한 손에`를 강조하는 것을 생각하면, 한 사람이 들 수 있는 IT 기기는 두 개가 최다다.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너무나도 많은 IT 기기에 손을 빼앗겼다.

휴대폰, 지갑 등이 가져간 양손을 자유롭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기계에서 자유로워진 손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는 미래를 꿈꾼다면, 모바일기기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지금 내게 알려주기 바란다.

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 twitter@YoungSe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