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년간 디스플레이를 연구해 온 전문가가 어느 날 갑자기 바이오 분야에서 놀라운 학술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것도 세계적인 바이오 학술지가 최고 논문으로 인정할 정도의 성과다. 빛의 양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인공 홍채를 개발한 것이다.
바이오머티리얼스는 이신두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의 인공홍채 개발 논문을 선도 논문으로 선정했다. 선도 논문은 7000여편의 논문 가운데 매달 한 편만 그 대상이 된다. 세계 바이오 신소재 연구 성과를 통틀어 상위 0.1%에 드는 연구로 인정받은 것이다. 뜻밖에도 그 주인공이 디스플레이 전문가라는 사실이 놀라움을 더했다.
여전히 비결이 궁금했다. 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액정 물리학`이라는 기초 과학에 그 답이 있었다. 이 교수는 “자연 질서를 주의깊게 살핀다면 분야에 상관없이 `분자`라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며 “액정 과학을 응용해 다양한 분야를 개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통섭·창의성 등이 과학계 전체를 아우르는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이 교수의 이 같은 성과는 더 주목받고 있다.
그는 액정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벨랩에서 디스플레이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액정이 디스플레이 산업에 본격 적용되면서 그가 한국의 대표적인 디스플레이 전문가로 인정받았을 뿐이다. 해외의 많은 지인들은 그를 `디스플레이 전문가`로 보지 않는다. 그는 액정 전문가다. 분야는 때에 따라 다르다. 생명체에 평소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이중막인 세포막과 액정 구조를 비슷하게 본다. 인공홍채 개발에 이어 최근 알츠하이머 관련 연구를 시작한 것도 이와 비슷한 원리다.
이 교수는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것은 기본을 꾸준히 다져왔기 때문”이라며 “여기에 다양한 분야로 관심을 넓힌다면 창의성 있는 성과들을 내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인공 홍채에 대한 답을 갖고 연구한 것도 아니었다. 생명체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몸 속의 많은 부분은 `액정` 상태라는 점이 힌트를 줬다. 홍채 이상이 난치병이라는 점에 착안해 인공 홍채 개발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지금까지 개발된 인공 홍채의 문제점을 보니 조리개 역할이 핵심이었다. 조리개를 기계적으로 작동시킬 것인지 아니면 어떤 물질로 흡수되는 정도에 차이를 두는 식으로 해결할 것인지 고민했다. 결국 물질이라는 화학에서 답을 찾았고, 다행히 국내에서 소재 전문가도 만날 수 있었다.
이 교수는 창의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이야기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창의성을 강조하고 싶다면 먼저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 문제점에 접근해 해결 방안을 찾는 훈련을 해야 한다”며 “그 근간에는 과학이라는 기초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