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업환경을 설명해주는 키워드를 고른다면 절벽, 혼돈 같은 암울한 단어가 대부분이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명제만이 유일하게 변치 않는 사실임을 기업인들은 절감하고 있다.
그렇다해도 생존 자체가 목표가 되기엔 불충분하다. `블랙 스완` 저자인 나씸 니콜라스 탈렙은 변화와 혼란을 뚫고 번영하기 위해 필요한 건 나약해지길 거부하는 강인한 내성이라고 갈파했다. 기업 리더에게 주어진 선택은 혁신하거나 또는 뒤처지거나 중 하나다. 혁신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당위다.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라는 방법론이 문제일 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GE가 최근 발표한 `2013 혁신 바로미터` 설문조사 결과는 주목할 만하다. 25개국 비즈니스 리더 3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는 `혁신 피로증`을 넘어 `혁신 현기증`을 호소했지만 불확실성을 돌파하기 위한 혁신 필요성엔 이의를 달지 않았다. 전체 응답자 91%가 혁신을 전략적 최우선 과제로 꼽았고 특히 한국에선 95%에 달했다.
우선 기업리더들은 안전성만을 추구해온 전통적 방식 대신 리스크를 영리하게 감수하려는 의지가 강해졌다. 스마트한 위험관리란 면밀히 위험을 계산해 관리하며 변화하는 상황을 새롭게 측정하고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성향을 의미한다. 더 흥미로운 건 `협동(collaboration)`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다. 혁신이란 `대박` 수준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라 기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가령 항공 산업에서 연료절감을 1%만 향상시켜도 15년간 300억 달러를 건져 신규 사업 투자재원으로 쓸 수 있다.
제품 혁신보다 사업모델 혁신을 우선시하는 최근의 트렌드가 협동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새로운 사업모델 개발은 자원이 많이 들지 않는 이점이 있다. 신흥시장에선 특히 그렇다. GE는 지난해 캐나다·중국·사우디아라비아 등에 고객혁신센터를 개설했다. 중국 청두에 설립한 혁신센터에서는 현지병원들과 연계해 고객니즈를 파악한다. 이런 노력으로 두 개의 신제품을 개발했고 몇 개월 안에 중국과 해외시장에 출시한다. 한국에는 에너지기술혁신센터를 지난해 개소했다. 한국 조선 해양 및 발전 에너지 기업과 협력해 세계 발전 설비와 해양플랜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다양한 기술 솔루션을 개발해 갈 것이다. 또 인천 송도에 있는 기술센터를 확대해 한국의 IT 강점을 활용해 다양한 산업용 소프트웨어 개발에도 박차를 가할 것이다.
협동이 혼자 할 수 없는 많은 일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사실은 도처에서 입증되고 있다. 컴퓨터 마우스를 처음 고안해낸 IDEO의 설립자 데이비드 켈리는 협동의 파급효과를 가장 명쾌하게 보여준 바 있다. 그는 최근 방송프로에서도 인류학자, 기자 같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데 어떤 방식으로 기여하는지를 보여줬다.
이번 설문조사를 보면 한국 기업리더들도 96%가 “혼자보다는 파트너십을 활용해 더 성공적인 혁신을 할 수 있다”고 답했다. 다만 `협동을 통한 혁신을 저해하는 요소로서 65%가 `기밀유지와 특허권보호 미비`를 꼽았다. 52%는 `파트너에 대한 신뢰부족`을 들었다. 신뢰부족이 협동의 걸림돌이라는 뜻인데 이런 경향은 글로벌 응답률도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한편, 한국기업 리더들은 또 중소기업이나 개인도 대기업 못지않게 혁신적일 수 있다는 데 92%가 동의해 작년보다 무려 22%나 높아진 수치를 보였다. 곧 출범할 한국의 새 정부가 기업관련 정책에 참고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베스 콤스탁 GE 마케팅최고임원(CMO) David.Cook1@g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