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화학회사 바커의 조한형 한국지사장은 최근 증축한 울산 폴리머 공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울산 공장의 기술력을 본사로부터 인정받아 증축한 점도 조 사장을 들뜨게 하지만 해외 다른 지사들로부터 대단하다는 칭찬들을 때는 더욱 즐겁다. 인프라 수준은 본사에 비해 전혀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비용과 시간을 절감했다. 증축 공장의 성과에 모두 놀라는 눈치다. 바커코리아는 한국 장비와 엔지니어링 실력이 뛰어난 덕을 크게 봤다고 설명했다. 본사는 심지어 미국에 한국 공장 설비를 그대로 가져다 짓겠다고도 했다. 결과적으로 바커는 엔지니어링 기술 수출 길을 열어준 셈이 됐다.
반대 사례도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나라의 전자·자동차 산업을 겨냥해 글로벌 소재 기업들이 생산시설과 연구시설까지 세우면서 물밀 듯이 들어왔다. 다우케미칼과 유미코아는 전자재료 본사를 한국으로 이전했을 정도다. 이렇게 야심차게 들어온 이들이지만 현실 앞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공장을 가동하기 위한 후방 인프라가 너무 빈약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소재 산업 층이 얇다 보니 이를 위한 후방 산업이 형성될 리 만무했다.
글로벌 소재 기업들의 투자를 다방면에서 활용해 보자는 이야기다. 대부분 소재 기업들이 한국에 짓는 공장은 첨단 소재를 다룬다. 대규모 투자를 요구하는 분야다. 그럼에도 이들의 투자를 활용할 만한 길은 많지 않다. 인프라가 없기 때문이다. 공장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자재들을 수입하는 것이 현실이다.
과거 우리가 글로벌 소재 기업들을 바라보는 눈은 `국산화`였다. 또 한편으로는 고용 창출과 달러 벌이를 위한 외자 유치만 바라봤다. 정책도 국산화나 외자유치를 위한 세제 혜택에 초점이 맞춰졌었다.
이제는 한 차원 더 높은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로벌 소재 기업들에게는 세제 혜택보다 인프라와 비즈니스를 잘 할 여건을 더 절실히 필요로 한다. 이런 여건이 조성돼야 글로벌 소재 기업들의 투자를 우리 산업이 온전히 흡수할 수 있다. 소재 기업은 고객인 전자·자동차 기업들과 파트너가 될 수도 있지만, 후방 산업의 파트너가 될 수도 있다.
간단한 일은 아니다. 생태계라는 것을 어느 한 순간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정확한 수요를 조사하고 파트너가 될 수 있는 기업들을 찾아 연결시켜주는 것만으로도 그 시발점을 만들 수는 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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