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표류 중인 정부 조직개편안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원안대로 통과되더라도 미래창조과학부가 창조경제 실현 주무부처로서 제구실을 하지 못할 것으로 우려됐다. 여야 정치적 야합으로 정부조직의 효율성이 훼손돼 아예 조직개편안을 원점에서 전면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7일 정보방송통신 발전을 위한 대연합(이하 ICT대연합)·한국사이버안보법정책학회·개인정보보호협회·한국전자파학회 등 학회와 협회·단체가 일제히 인수위에서 만든 정부 조직개편안을 재검토할 것을 주장했다.
ICT대연합은 이날 국회 여야를 방문해 “방송통신 융합 추세와 ICT 생태계 기본 정신에 입각,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마련한 미래부 기능에 일부 기능을 추가해야 한다”며 인수위 원안 수정을 요청했다.
조직개편안 재수정 요구는 인수위가 당초 발표한 방침과 최종 개편안이 크게 달라져 미래부가 `종이호랑이`로 전락할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인수위는 당초 교육과학기술부,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지식경제부에 흩어진 과학기술과 ICT 기능을 이관한다고 밝혔다. 교과부의 산학협력, 지경부의 신성장동력 발굴과 기획 기능도 미래부로 옮기기로 했다. 하지만 최종안에 과학기술과 산업을 잇는 신성장 동력 발굴·기획과 산업기술 R&D 기능이 지경부에서 거의 넘어오지 않았다. 산업융합의 틀이 될 산업융합촉진법, 기술이전과 사업화를 위한 기술이전 및 사업화촉진법도 지경부에 그대로 남았다.
박 대통령의 의중과 달리 미래부가 사실상 `빈수레`로 전락한 것은 신설 미래부의 인수 주체가 없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조직 방어에 나선 다른 부처에 이관 계획을 맡기면서 알맹이가 모두 기존 부처에 남는 상황이 벌어졌다는 지적이다. 인수위에 중량감 있는 ICT 전문가가 거의 배치되지 않으면서 다른 부처의 조직방어 논리가 그대로 수용됐다.
권은희 새누리당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하는 창조경제는 과학기술과 ICT 융합으로 신성장동력을 만드는 것인데 융합산업을 지원하는 산업융합촉진법이 미래부로 이관되지 않고 기존 부처에 남아 사실상 미래부의 융합사업이 힘을 잃게 됐다”고 지적했다. 권 의원은 “(산업융합을 담당하는) 산하기관인 산업기술평가관리원에는 신산업, 주력산업, 정보통신 등 3개 부문이 있는데, 이 가운데 정보통신 부문만 미래부로 넘어간다”며 “융합을 위해 조직을 합쳐 놓았는데 다시 조직을 가르는 아이러니도 벌어졌다”고 꼬집었다.
정보보호 정책의 분산도 산업 발전에 역행할 것으로 지적됐다. 한국사이버안보법정책학회와 개인정보보호협회 등 16개 인터넷 관련 학회·단체도 이날 성명서를 발표하고 여야가 개인정보·정보윤리 기능을 미래부와 방통위, 안전행정부로 분산하려는 합의에 이해할 수 없다는 결정이라며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관료 출신 한 관계자는 “여야의 이 같은 합의는 지난 20년간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이어진 통합적 인터넷 정책 기조에 전면 배치하는 것”이라며 “백지화하는 게 순리”라고 주문했다.
한국전자파학회 등 13개 관련 학회는 간담회를 열고, 여야 정치적 야합으로 빚어진 `주파수정책 분리`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정치권이 주파수 용도를 결정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 박았다.
과기계에도 미래부가 실속이 없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조무제 울산과학기술대 총장은 “미래부 조직도를 보면 과거 과기부와 정통부 조직을 합친 것보다 못해 사실상 알맹이가 없다”고 비판했다. 황주호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장은 “사용후 핵 연료 처리 문제도 교과부와 지경부가 합의해야 하는 불합리한 구조가 이번 개편논의에서 고쳐지지 않아 20년째 표류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김원배기자 adolf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