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사업이 지지부진하다. 내용도, 사업도, 예산도 기대에 다소 못 미친다는 것이 중론이다.
정부가 세계적인 수준의 기초연구환경을 구축하고, 기초연구와 비즈니스가 융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자는 취지로 시작했지만, 용두사미로 전락할 우려를 낳고 있는 이유다.
과학벨트 핵심은 기초과학연구 전담기관인 `기초과학연구원` 설립과 중이온가속기 건설이다. 그러나 갈 길은 산 넘어 산이다. 과학벨트의 양대 축인 기초과학연구원과 가속기 사업이 제대로 가기 위해서는 6대 난제부터 풀어야 한다.
사실 난제의 중심에는 예산이 있다. 돈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정치색 배제도 성공의 필수요인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기능지구 선정과 관련해서는 처음부터 `보이지 않는 정치력`이 작용했다는 설이 파다했다. `정치가 과학을 망친다`는 얘기까지 돌았다.
본래 과학벨트 충청 건립은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시절 공약으로 내놨지만, 어느 순간 충청과 대구-포항, 광주가 나눠 갖는 모양새로 변질됐다.
최근 부각된 이슈를 정리했다.
◇1.두 차례 걸쳐 사업내용 및 사업비 변경
총사업비로 보면 오히려 늘었으나, 이는 기능지구 증가에 따른 나눠 먹기식 예산증가에 불과하다.
사업기간도 당초 2009년부터 2015년까지였으나 사업자체가 좌충우돌하면서 2012년부터 2017년까지로 조정됐다.
본원과 가속기가 들어설 부지 예산은 아예 책정하지 않았다.
기초과학연구원 본원 부지 50만5921㎡ 매입비를 3.3㎡당 평균 50만원으로 계산하면 767억 원 가량 나온다. 가속기가 들어설 부지면적은 104만 9504㎡에 대략 1590억 원 정도 들 것으로 예상됐다. 이 2300억 원 가량이 공중에 뜬 것이다.
대전시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구축 사업이 국가가 확정한 국비 사업인 만큼 부지 매입비를 국가가 전액 부담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문창용 대전시 과학특구과장은 “박 대통령이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수차례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봤을 때 이 사업이 제대로 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사업 주체인 미래부 장관이 결정되는 대로 문제 해결을 위해 시에서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부지를 둘러싼 정부와 대전시간 논란이 끊이질 않는 이유다.
가속기 부대시설 예산 산정도 주먹구구식이다. 당초계획에는 가속기 부대시설비가 1704억 원 필요할 것으로 봤으나, 1개월 만에 4936억 원으로 3232억 원이 늘었다. 처음부터 계상이 잘못된 것이다.
◇2.기초과학 육성 왜 하필 가속기인가.
국가 차원의 기초과학 육성 사업에 가속기 건립이 핵심인 것을 두고 과학기술계가 의문을 제기하며 두고두고 논란거리를 삼았다. 왜 가속기를 통해서만 기초과학이 육성돼야 하냐는 것이다.
노벨상 수상이 목적은 아니지만, 기초과학 육성의 상징으로 돼 있는 노벨상을 타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이온 가속기를 구축해야할 이유는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철학적, 수학적 기초 인력도 태부족인데다 물리, 화학, 천문학 등 기초소양이 선진국에 비해 엄청나게 떨어지는 것을 감안할 때 체계적인 기초과학 육성을 위한 중장기 플랜부터 마련 한 뒤, 그 플랜에 맞게 우선순위를 둬 기초분야 투자를 해야 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일설에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설 당시 대통령인수위원회 고위급 인사의 자제가 가속기 전문가여서 가속기 도입사업에 드라이브가 걸렸다는 소문도 있다고 출연연의 한 관계자는 전했다.
◇3.야니스 논란 여전,,,도대체 야니스가 누구길래.
기초과학연구원이 세계 석학 초빙을 위해 가동 중인 캠퍼스(사이트랩) 단장 선정도 도마 위에 올랐다.광주시와 광주과학기술원(GIST)이 과학벨트 GIST캠퍼스 연구단장으로 영입한 야니스 세메르치디스 박사가 연봉협상을 포기하면서 자신의 몸값만 부풀렸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야니스 박사는 한국 정서에 맞지 않는 연봉 5억 원 가량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연봉협상을 포기했던 야니스 박사가 KAIST 물리학 분야 연구단장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확대됐다. 이 때문에 GIST는 유일하게 확보했던 사업단 하나를 포기해야만 했다.
최근엔 야니스가 서울 사립대 연구단장직을 알아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파문은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문제는 국내 정서상 외국계 거물급 과학기술자 연봉수준을 맞추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GIST와 협상하다 포기한 인물을 계속해서 국내 과학기술계가 접촉하고 있는 모습도 보기 좋지 않다.
한편 기초과학연구원은 지난해 가브리엘 애플리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교수를 비롯해 스티브 그래닉 일리노이대 교수, 이영희 성균관대 교수 등 17명의 연구단장을 뽑았으나 외국인 단장 3명은 현재까지 아무도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4.정부 나서 캠퍼스 예산 추가 삭감추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중이온가속기 구축 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는 가운데 전국 3곳에 설치하기로 했던 캠퍼스(사이트랩) 조성에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측됐다.
기획재정부가 KAIST와 광주과학기술원(GIST), DUP연합 캠퍼스에 지을 게스트룸 예산 442억 원을 전액 삭감하고 캠퍼스 연구시설 면적도 대폭 축소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정부는 KAIST 등 3개 캠퍼스에 설치할 전용면적 2만2500m²의 게스트룸 조성예산을 100% 삭감했다. 1인당 연구면적도 120m²에서 민간연구소 수준인 102m²로 21%가량 줄였다. 연구면적이 줄어들면 연구 참여 석·박사 연구원 수용공간이 부족해지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지역 대학과 공동융합연구에도 지장이 초래된다.
내년 수시배정 사업예산 150억 원도 발이 묶인 상태다.
기획재정부가 `거점지구 용지매입비 해결 이전에는 배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하면서 내년 사업추진 여부도 불투명하다.
◇5.출연연 인력 “아랫돌 빼 윗돌 궤기?”
기초과학연구원을 찾아보면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일하다 옮긴 인력들을 손쉽게 만날 수 있다.
인근 출연연구기관들이 반발하는 이유다.
출연연 한 관계자는 “일부는 출연연서 적응하지 못해 옮긴 인력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연봉이 두 배라니 위화감을 조성하자는 것도 아니고…”라며 말을 삼켰다.
아랫돌 빼 윗돌 궤기식 인력 충원은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예산확보 및 사업추진이 지지부진하다보니, 사업예산 대비 인건비 예산이 더 큰 가분수형 조직이 될 우려도 제기됐다. 인력은 선발해 놨는데, 할일은 마땅치 않은 상황을 염두에 둔 지적이다.
현재 과학벨트 관련 인력은 올해만 연구직 및 행정직, 학생, 비정규직 등을 포함해 1500여명 가량이 재직 중이다.
◇6.출연연구기관과 정체성 명확히 정리해야
기초과학연구원의 정체성 의혹 제기와 함께 연구단 구성의 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연구단의 중심은 대부분 대학교수다. 출연연 연구원들이 배제된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드러냈다. 기초, 원천연구는 대학만 하느냐는 논리다.
독일 막스플랑크나 일본 리켄 처럼 순수기초연구 중심으로 운영할 방침이라고는 하지만, 순수기초가 전무한 상황에서 제대로 그림을 그려놓고 사업을 펼쳐가는 것인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중구난방 식으로 자신들 편한대로 과제를 선정하고 과학기술자를 영입하는 것에 대한 일침이다.
과학기술계 한 인사는 “박근혜 정부에 기초과학 육성에 관한 어필은 상당히 한 것으로 보이지만, 국가 차원의 기초과학 육성을 위한 밑그림이 뭔지 모르겠다”며 “기초과학을 육성하려면 가장 먼저 로드맵부터 만들고, 중장기 발전계획을 세워야 하는 게 기본 아니냐”고 꼬집었다.
1. 부지예산 확보난
2. 캠퍼스 예산삭감
3. 우수인력 확보난
4. 기초과학 청사진 없어
5. 정체성 혼란
6. 출연연과 부조화
(단위 억원,자료 개별 취합)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