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재전송료 인상 공방이 뜨겁다. 지상파와 유료방송사업자만의 밥그릇 싸움 같지만 사실상 시청자를 볼모로 한 싸움이다. 방송 콘텐츠에 대한 합리적인 저작권료 산정없이 힘의 논리에 의해 결정되면 고스란히 소비자만 피해를 본다. 우리나라 재전송료 산정을 둘러싼 불편한 진실과 해법을 3회 걸쳐 진단한다.
지상파 방송사 요구대로 재전송료를 30% 이상 인상하면 유료방송사업자의 원가 부담이 크게 상승한다. 가입자당 월매출액(ARPU)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최대 10% 이상으로 치솟는다. 원가 부담 상승은 요금 인상으로 직결돼 소비자 부담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료방송사업자는 지상파 채널을 편성에서 제외할 수 없는 현실적 상황 때문에 협상력을 갖기도 어렵다.
◇시청자만 부담 가중=디지털케이블의 ARPU는 1만4000원~1만5000원이다. IPTV 사업자 중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는 1만5000원 수준이고, KT는 이보다 낮은 1만원 대다.
지상파가 요구하는 대로 재전송료가 인상되면 ARPU에서 재전송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게는 7.3%에서 많게는 11% 이상까지 올라간다.
유료방송 ARPU에는 주문형비디오(VOD)와 프리미엄 유료채널 비용도 포함돼 있다. 이런 비용을 제외하면 ARPU는 훨씬 낮아진다. 지상파 재전송료가 차지하는 비율도 부쩍 올라간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원가부담이 증가하는 것이다. 요금인상 외에는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매출과 ARPU를 직접 비교하긴 어렵지만, 유료방송사업자가 100여개가 넘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에게 배분하는 수신료가 매출의 25% 임을 감안하면 지상파가 요구하는 금액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
◇선택권 없는 시청자=우리나라 TV 시청가구 중 지상파 방송을 직접 수신하는 비율은 10% 수준이다. 90%의 가구가 유료방송을 통해 지상파를 시청한다.
유료방송 가입비율이 높은 것은 아날로그TV 방송 때부터 지상파 방송사가 수신환경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상파 방송을 깨끗하게 시청하기 위해 중계유선, 케이블TV 등에 가입했다. 디지털 전환이 이뤄진 지금까지도 직접 수신환경은 개선되지 않았다. 실제로 지역 민방은 전라북도 전역에 송신소와 중계소가 각 1개씩 밖에 없다. 유료방송이 없으면 SBS와 지역 민방을 제대로 시청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유료방송 외에는 지상파를 시청할 수 없는 구조적 모순이 있는 가운데 공공재적 성격이 강한 지상파 방송 때문에 요금인상이 되는 것도 역설적이다. 국가적으로 물가 인상을 억제하려는 움직임과도 역행한다.
◇사업자 선택권도 제한=사업자도 선택권이 없기 때문에 지상파 요구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
유료방송사업자가 협상력을 가지려면 `편성권` 또는 `채널번호 변경권`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 3사가 미치는 영향력이 막대한 상황에서 편성에서 제외하기가 쉽지 않다. 또 케이블, IPTV, 위성방송 등 경쟁 유료방송플랫폼이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의 플랫폼에서 지상파를 제외해도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채널번호 변경도 소비자 피해 때문에 쉽지 않다. 1년마다 정기 채널 편성을 통해 일부 채널 번호를 변경해도 시청자 반발이 거센데, 가장 자주 보는 지상파 번호를 바꾸면 엄청난 반발이 예상된다.
주정민 전남대 교수는 “지상파가 CPS를 400원을 올리기 위해서는 근거를 대야 한다”며 “유료방송사업자들은 비싸도 수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불공정한 거래”라며 “지상파의 행위는 독과점 시장에서 가격을 마음대로 올리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주 교수는 “재전송료 산정위원회를 만들어서 과학적인 근거를 통해 대가의 정당성을 정해야 한다”며 “최근 지상파가 갑자기 올리는 것은 스스로가 산정기준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건호·전지연기자 wingh1@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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