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세의 디자인스토리]<15> 플랫폼 시대

디자인은 노동력이 적어도 창의성을 효과적으로 발휘하게 해준다. 또 상상만했던 것들을 눈앞에 보여주는 것도 디자인의 역할이다.

젊은이들은 매일 SNS에 자신의 일상 이야기를 사진이나 영상과 함께 예쁘게 꾸며 올린다. 오늘 무얼 먹었는 지, 무슨 옷을 입고, 누구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를 일일이 올린다. 그들을 보면서 단순히 사실이 아닌 생각, 미래, 꿈을 만들어 이미지로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했다.

[김영세의 디자인스토리]<15> 플랫폼 시대

마침 해외에서 `핀터레스트`라는 소셜 큐레이션(Social Curation) 사이트가 인기를 끌었다. 소셜 큐레이션은 웹에 있는 콘텐츠 중에서 가치있고 새로운 것들을 발견해 나름의 기준으로 재구성, 공유하는 행위나 플랫폼을 말한다.

글로 된 SNS는 데이터량이 적지만 단번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요즘 젊은이들은 장문의 텍스트에 익숙하지 않다. 그들은 `짤방`이라는 글과 직접 관련없는 그림이라도 갈무리해 내용에 주목하게 만든다. 현대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이미지가 가지는 영향력을 짐작케한다.

그림이나 음악은 비언어 소통이 가능해 파급효과가 지역과 언어를 넘어 쉽게 다가갈 수 있다. 핀터레스트는 직접 이미지를 만들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인터넷에 올린 것에 `핀을 꽂음(Pined)`으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마치 개개인이 잡지의 편집자가 된 것처럼 자신이 관심있는 카테고리의 상품을 소개하고 때로는 새로운 용도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위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또 다른 창작을 촉발시켰다. 자발적 공유와 창조가 이뤄지는 것이 플랫폼의 힘이다.

지난해 여름 윤석중 전 SK텔레콤 신규사업부 임원은 내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뛰어난 패션 감각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 정보와 의견을 나누고, 좀 더 나은 스타일을 서로 찾아주는 둥지 이야기였다. 바로 `라피네스트(Raffine+Nest)` 기획이다.

세상에 모든 아름다움을 다 가질 수는 없다. 하지만 라피네스트(이하 `라핀`)에는 다 담을 수 있다. 상품을 가지고 와서 패션 잡지처럼 편집하면 언제든 그 사진만으로도 상품 구매처에 링크로 접속할 수 있다. 한마디로 소비자가 직접 만든 패션 잡지와 구매 가능한 온라인 카탈로그를 합쳐 놓은 개념이다.

라핀은 흔히 말하는 `포샵` 사용에 능숙한 이용자가 쉽게 조작할 수 있도록 하나의 툴로 만들어졌다. 사용자가 쉽게 쇼핑몰에 있는 이미지에서 배경을 제외한 상품만을 따오고, 썸네일이 아무리 작아져도 편집화면의 분위기가 손상되지 않도록 개발했다. 기술적으로도 패션 큐레이션 사이트답게 매우 신경써 제작했다. SNS의 속성을 그대로 따 온 시스템 이용자인터페이스(UI) 디자인은 이노가 전담했다. 사용에 익숙해지면 팔로잉(Following)을 바늘로, 팔로워(Follower)를 실로 표현한 디자인 디테일이 눈에 들어온다. 패션 큐레이션 사이트의 정체성을 높여주는 요소다.

기존의 온라인 쇼핑몰이나 홈쇼핑은 `이것이 트렌드다`하고 제시해줬다. 우리는 소비자가 직접 트렌드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도구를 만들어줬다. 사람은 누구나 개성이 있고, 드물게는 뛰어난 감각을 가진 사람도 있다. 시간과 돈, 서로 어울리는 상품을 찾아 백화점을 돌 체력이 부족했을 뿐이다. 기존 블로거처럼 실제로 옷을 입고 사진을 찍고 편집하는 수고를 덜면 더 많은 가능성을 열 수도 있다. 창의성과 개성이 넘치는 젊은이에게는 신나는 놀이와 마찬가지다. 라핀이 노린 것이 바로 놀이처럼 즐기는 온라인 잡지이자 쇼핑몰이었다.

디자인은 이제 눈으로 보이는 실체에서 사람들의 생활 속 경험으로 깊숙이 파고들어가고있다. 디지털 세상은 과거의 진부한 디자인 교육을 통해 얻은 실력만으로는 따라잡기 힘든 속도로 변화했다.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만으로는 기업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가 없다. 기업과 소비자의 관계는 생산자와 구매자의 일시적 관계로 끝나지 않는다. 구매자가 생산자의 상품을 사용하는 기간 전체의 관계로 늘어났다. 그 관계는 기업의 브랜드를 통해서 더욱 길게 이어진다

이 관계를 깊이 지속시키는 수단 중 하나가 플랫폼 문화다. 소비자의 힘과 위치는 디지털 기술과 플랫폼 문화 덕분에 더욱 강력해졌다. 소비자는 디지털 서비스로 많은 사전 체험과 구매에 관련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기업은 이런 `슈퍼파워`를 가진 소비자에게 사이버 세상속에서 즐길수 있는 온갖 놀이와 편리함을 제공해야 한다.

이노디자인의 핵심 프로젝트 중 하나가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을 디자인하는 일이다. 이는 세계적 추세와 궤를 같이 한다. 플랫폼 디자인의 핵심은 인간중심 사고다. 디자이너의 역할은 아름다운 사이트와 편리한 UI를 넘어 사람들이 어떤 생활과 생각을 추구하는 지 알아내는 것으로 광범위해졌다.

아무리 작은 플랫폼도 SNS를 통해 다수에게 전달돼 창의력과 융합되면 그것은 더 이상 규모의 문제가 아니다. 라핀도 마찬가지다. 이 플랫폼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패션 블로거가 될 수도 있고, 연예인 소품 쇼핑몰의 머천다이저(MD)가 될 수도 있고, 스타일리스트, 디자이너가 될 수도 있다. 라핀은 사용자와 MD를 연결하고 그들의 창의력에 날개를 달아줬다. 쉴 수 있는 작은 둥지만 제공하면 그들의 창의성은 더 큰 형태로 주인에게 돌아간다.

우리는 플랫폼에 가능성을 심었다. 상상의 세계를 먼저 개척하는 기업만이 플랫폼 시대 경쟁에서도 앞서 나갈 수 있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