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애플 `신비주의`에 죽어나는건 결국…

글로벌 스마트폰 업체들이 차세대 스마트폰의 정보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심지어 `신비주의` 전략을 구사하면서 애꿎은 부품 협력사들에게 불똥이 튀고 있다. 완제품의 기술 규격을 수시로 바꾸면서 애초 개발한 부품들이 악성 재고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협력사들은 재고 처리와 새로운 부품 수배라는 이중고(二重苦)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일부 스마트폰 부품 업체들에 구매 예상 수량(Forecast) 예고 기간을 대폭 축소했다. 통상 업계에서는 고객사가 협력사에게 구매 확정 물량이 명시된 구매발주서(PO)와 향후 2~3개월간의 구매 예상 수량을 함께 전달한다. 협력사가 제품 생산에 필요한 부품을 충분히 확보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부품에 따라 납기가 천차만별이어서 구매 예상 수량 제공이 필수다. 해당 업체 관계자는 “최근 삼성전자는 정보 유출 방지와 완제품 기능 개선을 위해 양산 직전에도 제품 설계 구조를 수정하고 있다”며 “삼성전자 스스로도 최종적인 제품 설계 구조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구매 예상 수량을 제공하지 못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고객사의 빈번한 설계 구조 변경은 악성 재고를 발생시키는 요인이다. 기존 부품을 새로운 제품으로 대체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정 기능에만 사용하는 부품은 재활용할 수 없어 창고에 쌓인다. 양산이 임박한 시점에서 설계 구조를 변경하면 납기가 긴 부품은 필요 수량만큼 확보하기 어렵다. 어렵게 물량을 조달해도 고객사가 다시 설계 구조를 변경하면 재고로 전락한다.

애플은 부품 협력사들에게 부품 발주 시기와 물량만 통보한다. 완제품의 개발 일정과 기술 규격은 알리지 않는다. 협력사를 통해 외부에 출시 시기, 상세 규격 등 중요 정보가 유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협력사는 애플에 공급한 물량이 전량 다 사용되는 것인지 파악할 길이 없다. 애플이 완제품에 사용하고 남은 재고는 고스란히 협력사에게 돌아온다. 업계 관계자는 “공급 계약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완제품 개발 중에 발생한 부품 재고는 전량 협력사가 처리한다”며 “매출 확대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재고를 떠안는 셈”이라고 말했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