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 클로즈업]호감 경제학

#. 스티브 잡스 전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확실한 비전과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였지만, 극단적으로 자기중심적 성향을 보이면서 함께 일하기 힘든 리더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미국 `보스턴 글로브`는 잡스의 일생을 담은 월터 아이작슨의 전기에 대해 이런 서평을 썼다. “스티브 잡스는 인생에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는 혼자 고통을 감내하지 않았다. 그는 불행을 바이러스처럼 퍼뜨렸고 친구에게도 욕설을 퍼부었으며 가족을 등한시하고 동료들을 모욕하고 매도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끝까지 잡스를 사랑했다.”

[북스 클로즈업]호감 경제학

#. 래리 엘리슨 오라클 창업자는 실리콘밸리의 유명한 비호감형 리더다. 그는 오라클 연례 오픈 월드 회의에서 경쟁자들을 조롱했고 경쟁업체인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조너선 슈워츠 CEO에게는 “블로그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쓴다”고 공격했다. 빌 게이츠 MS 창업자에 대해서는 “미국에서 가장 부유하지만 가장 똑똑한 건 아니다”고 말했다. 엘리슨 회장에게 이처럼 말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나는 적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말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적을 물리치고 싶습니다”고 답했다.

이 책 원작의 제목은 `라이코노믹스(likeconomics)`다. 영어로 `호감`이라는 뜻을 가진 `라이크(like)`와 경제학을 의미하는 `이코노믹스(economics)`를 합쳐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우리말로는 `호감 경제학`이다.

앞서 언급한 스티브 잡스, 래리 엘리슨 등은 실리콘밸리에서 대표적인 비호감 CEO로 통하고 있다. 이 책의 사례로 들기에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호감의 의미를 조금 더 깊이 파보면 이해가 간다.

겉으로 친절하게 보이지만 호감이 아닐 수도 있고 호감을 얻고 싶은 욕구를 불친절로 나타낼 수도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잡스나 엘리슨은 호감을 얻고자 부단히 노력했다고도 볼 수 있다.

저자는 마케팅 전문가로서 심층적인 조사 연구를 이용해 비즈니스 과정에서 호감을 얻고 신뢰를 유지할 수 있는 다섯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진실성(Truth), 관련성(Relevance), 이타성(Unselfishness), 단순성(Simplicity), 타이밍(Timing)으로 머리글자를 따서 `TRUST 원칙`이라고 명명했다.

진정한 진실을 기반으로 다른 누가 이미 신경을 쓰고 있는 일에 관심을 집중해 이기심을 버리고 타이밍에 맞춰 단순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신뢰성의 위기다. 신뢰성이 무너진 탓에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기도, 직장을 구하거나 유지하기도, 누군가에게 무엇을 믿게끔 설득하기도 더욱 힘들어졌다.

이 책은 호감을 넘어 신뢰에 대해서 말한다. 그렇다고 신뢰가 중요하다는 뻔한 이야기를 되풀이하지도 않는다. 호감을 얻지 않고는 신뢰를 쌓을 수 없다는 얘기다.

호감을 얻는다는 건 사람들이 표면적으로 좋아하게끔 만드는 것이 아니다. 좋은 게 좋다는 것도 아니다. 인간이나 조직체가 어떻게 신뢰를 잃는지, 어떻게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는지, 그리고 좀 더 확고한 믿음을 쌓는 데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호감이 전략을 이기는 이유를 담았다.

로히트 바르가바 지음. 이은숙 옮김. 원더박스 펴냄. 1만5000원.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