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처증과 RFID가 만난 '최악' 시나리오

# 한 여성이 패혈증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다. 검사 결과 패혈증 원인은 그녀의 어깨 부근의 피부에 삽입된 이물질이었다. 그런데 이물질 제거 수술을 통해 그녀의 몸에서 빼낸 것을 놀랍게도 전자태그(RFID) 칩이었다. 본인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살균도 되지 않은 RFID 칩이 몸속으로 들어와 감염을 일으킨 것이다.

의처증과 RFID가 만난 '최악' 시나리오

RFID칩이 이식된 경로를 수사하던 경찰은 그녀의 남편을 용의자로 지목한다. 수사 결과 컴퓨터 공학자였던 남편이 아내의 불륜을 의심한 나머지 아내에게 수면제를 먹여 재운 뒤 몸속에 RFID 칩을 이식한 것이 밝혀졌다. 그는 이를 이용해 그녀의 동선을 파악하려 했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간 질환을 앓고 있던 부인은 이 칩으로 인한 감염으로 간이 완전히 망가진다. 결국 48시간 내에 간 이식을 받지 못하면 사망할 것이라는 선고를 받는다.

미국 최장 기간 방영된 범죄, 법률 드라마였던 `로 앤 오더(Law & Order)`의 스핀오프 시리즈인 `로앤오더:성범죄수사대` 시즌 8의 한 에피소드다. 남편은 부인에게 RFID 칩을 이식한 뒤 집과 아내의 직장, 그리고 불륜 상대로 의심되는 남자의 집 이렇게 3군데에 칩 리더기를 달았다. 아내가 이 장소에 있는지 여부와 머문 시간 등을 체크해 아내 불륜을 파헤치려 한 것이다. 결국 아내의 불륜을 확인하게 된 남자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살인을 저지르게 아내마저 죽음의 문턱으로 밀어 넣는다. 남자의 질투심과 첨단 과학 기술이 잘못된 목적으로 만났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상황을 보여준 셈이다.

RFID는 특정 주파수와 전파를 이용해 무선으로 신호를 주고받는 시스템이다. 최근 들어 주변에서도 RFID 칩을 쉽게 볼 수 있다. 열쇠가 필요 없는 도어록이나 교통카드가 대표적인 예다. 시스템은 크게 3가지로 구성된다. 태그(Tag), 리더(reader), 그리고 데이터베이스(database)다. 태그란 대상의 식별 정보를 무선으로 전송하는 장치를 말하고 리더는 태그가 전송하는 데이터를 수신하고 다시 태그에 새로운 정보를 보내 주는 장치다. 그리고 데이터베이스는 리더가 수집한 태그의 정보를 받아서 개체를 식별하고 정보를 처리해 다시 리더로 보내는 역할을 한다. 남편이 불륜을 저지른 아내의 몸에 RFID 칩을 이식하고 리더기를 곳곳에 설치한 것도 상호 정보 교환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다.

최근 RFID 칩은 이 에피소드에서 한 차례 더 진화해 개인 식별 시스템에 쓰이고 있다. 지금까지 RFID 칩을 생명체에게 이식하는 대상은 동물들에 국한되어 왔다. 애완동물이나 희귀한 야생동물에 말이다. 애완견의 귀에 주인의 정보가 담긴 RFID 칩을 이식하면 주인을 잃었을 때 쉽게 찾아줄 수 있다. 희귀 야생동물에게 RFID 칩을 이식하면 이동과 생태를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에게 적용될 경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런 기술이 인간에게 적용될 날이 멀지 않았다. 한 사람의 의료 정보, 계좌 정보, 신상 정보 등이 모두 RFID 칩 하나에 이식되면 우리는 의료 보험증이 없이도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신용카드나 현금이 없어 슈퍼마켓에서 RFID 칩에 이식된 계좌 정보로 계산할 수 있다. 얼핏 보면 매우 편리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에피소드에서처럼 RFID 칩을 이용하면 개인의 이동 경로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사생활 침해의 우려가 크다. 칩이 해킹될 경우 개인 신강과 의료 정보가 노출되는 것은 물론 심지어는 내용을 바꿔 버릴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보안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RFID 기술은 분명 복잡한 정보를 빠르게 저장하고 쉽게 업데이트할 수 있게 해주는 편리한 기술이다. 하지만 아무리 편리한 기술이라도 도입됐을 경우에 일어날 수 있는 문제점을 다각도로 철저하게 검토한 후 적용하는 것이 언제 생겨날지 모르는 피해자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m

P.S 이 에피소드는 `바람을 피우지 말자`거나 `배우자의 병력을 정확히 알고 RFID 칩을 깨끗하게 소독해서 몰래 이식해야 한다`는 교훈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