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 역삼동 삼정호텔에서 열린 `정보통신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임(미래모임)`에서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는 “일본은 연간 130조원의 IT시장이 있는 기회의 땅이지만 우리가 이 시장을 얼마나 파악하고 진출하려는 노력을 해왔는지는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염 대표의 강연 내용이다.
일본 IT시장에 진출하기에 앞서 일본의 국민성과 기업문화를 알아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일본에 대해 `지면 안 되는 나라` `배워야 할 나라` 정도로만 알고 있었지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했다.
일본은 의원내각제라고 하지만 모든 일을 관료들이 도맡아 한다. `관료내각제`라는 말이 생겨난 이유다. 그런데 이 관료들의 전문성이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공무원 재교육이 없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은 표를 의식하기 때문에 효과 없는 대규모 토목사업도 잦다. 하루에 차가 100대 다니는 세토나이해의 해상사장교가 대표적인 예다.
UN 전자정부 랭킹을 보면 우리나라는 수년째 1위를 차지하지만 일본은 겨우 20위 내에 드는 수준이다. 한국은 지난 10년 동안 전자정부 사업에 15조원을 투자한 반면, 일본은 매년 40조~50조원을 전자정부 사업에 쏟아붓는다. 그런데도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은 그만큼 형식적인 사업이 많고 관료들의 전문성이 낮다는 것을 방증한다.
일본은 특정 물건과 기술을 개발하는 데 집중하는 능력은 있지만 막상 그 기술이 필요 없게 되더라도 이를 쉽게 놓지 못한다. 7년 전 전자주민카드를 도입했는데 현재 전체 인구 1억2000만명 중 약 600만 명만이 이를 사용하고 있다. 전자운전면허증 역시 리더기가 장착된 곳이 운전면허시험장 등 극히 일부에 불과해 사용률이 낮은 실정이다.
오히려 파괴적 혁신의 모습은 우리나라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다. 단적인 예가 도쿄역과 서울역의 개찰구 모습이다. 도쿄역에는 기술력이 뛰어난 업체가 많은 비용을 투자해 개찰구를 구축했다. 하지만 서울역에는 개찰구 자체가 없다.
국가 정보화 전략 구조를 살펴보면 일본에는 내각관방IT추진실이 있는데 IT벤더에서 파견 나온 사람들이 일을 하는 사례가 있다.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격이다. 총리대신은 매년 바뀌고 공무원 정보화 지식은 낮다. 애초에 IT 전문가가 공무원으로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IT 업계의 먹이사슬도 이해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하는 사례가 많지 않다. 그런데 일본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사이가 정말 좋다. 후지쯔 협력업체가 되면 이를 보증으로 은행에서 융자를 해준다. 일이 없더라도 대기업에서 일을 만들어주는 식이다.
일본 IT시장은 인력 파견 사업이 많다. 시스템통합(SI)이 주요 사업이다 보니 제품 경쟁력은 떨어진다. 한 공공기관에서 사업을 하는데 모든 업체가 코볼을 제안하더라. 보수적 기술관으로 인해 신기술 도전의식이 희박하다.
이외에도 사회주의적 비즈니스 관행으로 생산성 도외시, 리더십 부재, 경기 하락으로 인한 매출 저하와 이익 감소 등이 요즘 일본 업계의 고민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일본 진출 명암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특별한 전략이 없다는 생각이다. 언어 장벽도 걸림돌이지만 지속적인 서비스 지원이 아쉽다. 앞서 말한 여러 가지 특성들을 기반으로 일본 정보화 시장을 분석해야 한다. 우선 일본에 진출해야 하는 이유와 목적을 명확히 하고 관련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시장분석에 이어 경쟁력 있는 제품 개발, 진입 전략, 파트너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
앞서 밝힌 대로 일본은 연간 130조원 규모의 기회의 땅이다. 일본의 자금력과 한국의 기술력이 결합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일본 정보기술 업계와 역할을 분담해 해외 시장 진출도 꾀할 수 있다.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는 20년 전부터 일본에서 사업을 펼쳐왔다. 사가현 사가시 기간행정시스템을 컨설팅했고 오키나와현 우라소에시 기간행정시스템을 개발했다. 국내 벤더의 일본진출을 지원하고 판매도 대행한다. 우리 같이 조그만 회사도 일본에서 사업을 하는데 다른 회사들이 못할 리 없다. 이 점을 알려주고 싶었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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