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의 한 아우디 전시장. 한 커플이 자동차 딜러와 이야기를 나누며 태블릿을 열심히 터치한다. 남자가 태블릿에서 원하는 색상을 고르자 앞에 비치는 대형 화면에서 천천히 돌아가는 아우디의 색상도 바뀐다. 시점을 바꿔 차 안을 들여다 보던 여자는 조수석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든다며 다른 디자인을 선택하자 눈깜짝 할 사이에 대형 화면 속의 조수석도 바뀐다.

이 커플은 그 뒤로도 한 시간동안 태블릿을 이용하며 이리저리 디자인을 바꿔보다 만족한 표정으로 계약서에 사인을 마치고 딜러와 인사를 나누고는 사라진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같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영국 런던 메이페어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런던 메이페어에 위치한 아우디 시티를 방문하면 누구나 대형 화면을 통해 이런 경험을 즐길 수 있다.
◇ "전시장에 컴퓨터도 없는데..." = 물론 전시장의 대형 화면에 비치는 자동차 영상은 미리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마다 실시간으로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그려진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런 작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컴퓨터를 정작 전시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된 것일까. 엔비디아(www.nvidia.com)가 미국시간으로 지난 19일 새너제이에서 열리고 있는 그래픽 기술 행사 `GTC2013`에서 처음 공개한 클라우드 그래픽 서버 컴퓨터 `그리드 VCA`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딜러와 커플이 보고 있었던 화면속의 영상은 같은 시간 영국, 혹은 지구 어딘가에서 돌아가고 있었던 그리드 VCA가 보내준 것을 단순히 스트리밍으로 수신한 것에 지나지 않았던 셈이다.

이날 공개된 그리드 VCA의 성능은 엄청나다. 가장 성능이 낮은 제품이라 해도 그래픽칩셋(GPU)은 8개, 그래픽 메모리는 32GB를 달았다. 메모리만 해도 192GB나 되는 데다 16개 작업을 동시에 실행할 수 있는 CPU를 달았다. 이 서버 컴퓨터에는 최대 8명이 동시에 접속해 쓸 수 있다. 가격도 2만 4,900달러(한화 약 2,800만원)로 만만찮고 16명이 동시에 작업할 수 있는 서버 제품은 3만 9,900달러(한화 약 4,500만원)다.
◇ 완제품 서버 내놓은 이유는? = 하지만 엔비디아는 데스크톱/노트북용 그래픽칩셋 `지포스`와 전문가용 그래픽칩셋 `쿼드로`, 과학계산용 고성능 연산장치 `테슬라`를 개발하고 그래픽 기술을 연구 개발하는 그래픽 전문기업이다. 물론 엔비디아 뿐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 시트릭스 등 다른 IT기업이 지닌 기술의 도움도 받기는 했지만 완제품, 그것도 서버 컴퓨터를 직접 만들어서 판매하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유가 뭘까. 엔비디아 젠슨황 CEO의 기조연설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이날 그는 "예전처럼 직장에 놓여있던 PC를 쓰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나 이동하면서 노트북이나 태블릿, 스마트폰처럼 다양한 기기를 쓴다. 게다가 그래픽스, 영화 제작 등에 쓰이는 데이터의 양은 막대하다. 심할 경우 데이터를 옮기는 데만 꼬박 하루가 걸린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노트북이나 태블릿에 중요한 데이터를 담아 두었다가 잃어버렸을 때도 문제가 생긴다.
그리드 VCA는 이런 문제를 거꾸로 해결했다. 고성능 서버 컴퓨터를 한 대 두고 필요한 사람이 원할 때마다 접속해서 쓰게 만들었다. 그래픽 작업이나 영화 작업, 동영상 편집에 필요한 데이터는 모두 서버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작업할 때마다 대용량 데이터를 복사할 필요도 없고 노트북이나 태블릿을 분실했을 때 유출될 염려도 없다.

게다가 모든 작업을 서버 컴퓨터에서 수행하기 때문에 책상마다 고성능 워크스테이션을 놓아둘 필요가 없다. 윈도 운영체제, OS X 등 운영체제를 가리지도 않는다. 태블릿이나 가벼운 노트북 한 대만 있으면 인터넷이 연결된 곳 언제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셈이다.
서버 사용자 수에 여유가 있다면 한 사람이 동영상 편집, 3D 그래픽 등 여러 개 작업을 동시에 실행할 수 있다. 영상 유출과 제작 기간에 민감한 헐리우드 영화 제작사, 스튜디오나 고객과 의견을 주고 받으며 시안을 수시로 수정해야 하는 그래픽 스튜디오가 벌써부터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