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공공기관, RFP에 특정 조건 못 박는 관행 여전

일부 공공기관에서 제안요청서(RFP)에 특정 업체에 유리한 조건과 규격(스펙)을 못 박아 공지하는 관행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보전략계획(ISP) 결과를 토대로 규격을 한정한다는 입장이지만, 주로 외산 제품에 유리한 경우가 많아 `불공정 입찰`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수도권 K지자체가 가상화 사업을 발주하면서 하이퍼바이저 등 특정 가상화 기술을 자체 보유한 업체만 참여하도록 RFP를 공지했다. RFP 내용대로 입찰이 진행되면 국산 업체는 참여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가상화 분야에서는 지난해 완도군과 군산시가 특정 외산업체만 가능한 기능을 RFP에 명시해 빈축을 샀다.

최근 이슈가 되는 망분리 사업에서도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망분리의 불편함을 해소하려면 분리된 망 사이로 데이터를 전송하는 망연계 솔루션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부분 공공기관이 4~5년 전 방식인 `스토리지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외산 스토리지 업체에 반사이익을 제공한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기존 제품을 증설하는 경우 해당 제품과 공급업체에 유리하게 RFP가 작성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년간 사용해온 검증된 제품을 사용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전혀 새로운 제품을 도입하는 경우에도 참여 조건을 한정짓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주장이다.

중소기업이 개발한 신규 기술의 경우 로비력이 막강한 대형 외산업체에 밀려 입찰 참여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검증된 제품도 좋지만 최소한 신규 제품을 시연해볼 수 있는 기회라도 달라는 게 업체들의 요구다.

한 한국 데이터베이스(DB) 업체 관계자는 “외산 업체 등 특정 업체에 유리한 기능을 명시해 RFP가 공지되면 이의를 신청하고 여기에 맞춰 RFP가 수정되는 경우도 있다”며 “하지만 발주 전부터 모든 관계 업체가 공평한 참여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려는 담당자들의 생각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