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130>PCS 의혹 검찰로<1>

세상일은 굴곡(屈曲)의 연속이었다. 허공의 바람처럼 미래는 예측불가였다.

“개인휴대통신(PCS)사업자 선정 등 기간통신사업자에 대한 특감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특감 결과 이석채 전 정보통신부 장관(청와대 경제수석 역임, 현 KT 회장)이 해당업체와 유착해 직권을 남용하고 부당 개입한 의혹이 있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습니다.”

1998년 4월 7일.

감사원은 이날 그해 2월 16일부터 3월 10일까지 실시한 PCS사업자 선정 특혜 의혹에 대한 정통부 특감 결과를 발표했다. 종결된 것으로 여겼던 PCS 특혜 의혹이 감사원의 손을 떠나 검찰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박준 감사원 제1국장(감사원 사무차장 역임)은 “PCS 특별감사 결과 이 전 장관이 LG텔레콤과 한솔PCS가 선정되도록 기준을 임의로 바꾸고 심사위원에게 압력을 행사했다”며 “감사원은 이들 업체와의 유착 의혹과 정치적 외압 여부를 규명하기 위해 검찰에 이 전 장관 수사를 의뢰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PCS사업자 선정은 문민정부 최대 이권사업으로 불렸다. 삼성과 LG, 현대, 대우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은 합종연횡(合從連衡)으로 PCS사업권 획득에 참여해 `재벌들의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감사원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강력한 의혹 제기에 따라 그해 2월부터 오정희 감사1국 과장(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감사원 사무총장 역임)을 반장으로 8명의 감사팀을 정통부에 파견했다. 이들은 정통부에서 20일간 기간통신사업자 선정 전반에 관해 특감을 실시했다.

감사원 특감 대상은 PCS사업의 경우 △사업자 수, 선정 방식, 청문평가 방식 변경 사유 △심사위원 선정 및 평가관리의 적정성 △심사·선정과정에 외부인의 부당 개입 여부 등이었다. CT-2와 기간통신사업자는 과당경쟁, 중복투자 등에 관리감독의 적정성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감사팀은 사업자 선정에 관여한 정통부 공무원과 심사위원을 상대로 △사업자 선정이 추첨제에서 점수제로 바뀐 경위 △청문회 배점 방식을 평균점수 방식에서 전무배점 방식으로 바꾼 이유 △통신장비제조업군과 비제조업군에서 각각 사업자를 선정하는 제한경쟁 방식 도입 경위 △서류심사 후 청문심사 도입과 청문심사에서 LG텔레콤과 에버넷(삼성-현대 컨소시엄)의 순위가 뒤바뀐 경위를 추궁했다.

감사원은 3월 14일 오후 서면질의에 대한 이 전 장관의 답변 내용을 공개했다. 이 전 장관은 당시 미 하와이 동서문화센터 연구원으로 있었다.

감사원이 공개한 주요 질의 및 답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업자 선정방법이 당초 추첨제에서 실무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점수제로 변경된 사유는 무엇인가.

▲추첨제에 문제점이 많아서 그랬다. 실무자들의 추첨제 유지 건의는 없었다(감사원은 조사 결과, 실무진이 추첨제에서 점수제로 바뀌는 데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통신장비제조업군과 비장비제조업군을 나눠 각각 선정업체를 정하는 제한경쟁 방식을 도입한 이유는 무엇인가.

▲경제력 집중을 막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4대 재벌끼리 경쟁하도록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판단했다(감사원은 장비제조업군에서는 LG텔레콤과 삼성-현대 컨소시엄인 에버넷이 경합한 끝에 LG텔레콤이, 비장비제조업군에서는 한솔PCS가 각각 선정됐다고 밝혔다).

-사업자 신청 마감 후 왜 청문심사 방식을 도입했는가. LG텔레콤과 에버넷의 서류심사 결과가 청문심사에서는 바뀌었는데 이유는.

▲청문회 제도는 실무자들이 작성한 허가심사 기본계획에 포함돼 있어 그대로 한 것이지 내가 한 것은 아니다.

-청문심사위원 선정을 왜 관계직원의 자료에 의하지 않고 직접 선정했는가.

▲정보 누설 최소화를 위해 직접 선정했다.

-LG텔레콤과 한솔PCS 선정은 사전 내락설이 있다. 외부 인사의 압력에 의해서 한 것은 아닌가.

▲김기섭 전 안기부 차장이 전화로 “밖에 의혹이 있어 입장이 곤란하다. 심사위원에 경실련 등 민간단체 인사를 꼭 포함시켜 달라”는 부탁을 한 적은 있다. 그러나 정치적 압력은 없었고 사업자 선정도 독자적인 소신에 의해서 했다.

이 전 장관의 서면 답변은 평소 경제력 집중에 대한 그의 소신을 그대로 밝힌 것이었다.

당시 정부의 사업자 선정 기본방침은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 완화 △제조업과 관련 기기산업 발전 △ 중소기업 육성 세 가지였다.

감사원의 PCS 특혜 의혹 특감 결과는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당시는 김영삼정부가 물러나고 김대중정부가 들어선 상태였다. 감사원이 전 정권 눈치를 볼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감사원은 PCS 특혜 의혹을 입증할 만한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 대통령직인수위 측이 PCS사업에 정경유착의 엄청난 권력형 비리가 있을 것이라고 의혹을 주장한 것과는 사실이 달랐다.

감사원은 특감 후 정통부 장관에게 지적 사항은 재발을 방지하고 업무 관련자는 주의 촉구(주의) 조치를 취하라고 통보했다. 정통부는 감사원 통보로 PCS 특혜 의혹은 일단락된 것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4월 들어 정통부의 이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감사원은 특감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전 장관이 공청회와 통신위원회 등을 통해 결정된 사업자 선정기준을 바꿔 비장비제조업체인 한솔PCS가 유리하도록 장비제조업체와 비제조업체를 분리 경쟁시키는 제한경쟁 방식을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또 최종단계에서 삼성·현대 컨소시엄인 에버넷에 뒤지던 LG텔레콤이 선정되도록 통신위원회의 심의도 거치지 않고 심사위원이 다수결로 선정한 업체에 만점을 주고 다른 업체들은 0점 처리하는 방식을 도입, 순위가 뒤바뀌도록 했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이 전 장관이 심사위원들을 직접 선정하고 이들에게 대기업 컨소시엄인 에버넷과 글로텔(금호·효성 컨소시엄)에 불리한 평가를 주도록 하는 지침을 내렸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또 △사업 타당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아 시티폰사업이 시행 1년 만에 실패했고 △주파수공용통신(TRS) 사업 결정 시 통신 방식을 디지털로 확정, 국내에서 개발된 아날로그 방식을 사장시켰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이날 특감 발표에 앞서 감사위원회의를 열어 PCS사업자 선정과정에 대한 특별감사 결과를 의결하고 이 전 장관은 검찰에 수사의뢰하기로 결정했다.

감사원 실무진은 이 전 장관이 주도적으로 1996년 PCS사업자 선정을 위한 평가 방식을 바꾸고 심사위원을 선정한 일련의 과정에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 검찰에 고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결론짓고 감사위원회의에 이를 건의했다.

감사원이 발표한 기간통신사업자 선정과정의 주요 의혹은 아래와 같다.

◇PCS사업

이 전 장관은 1995년 12월 3단계 사업자 선정 방식으로는 개입이 어렵게 되자 통신사업자 선정이 경제력 집중 계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1차 심사 점수 순으로 선정하기로 했다. 비장비제조업체인 한솔PCS가 현대·대우·삼성·LG 등 통신장비 제조업체와 경쟁에서 기술력과 사업 수행능력에서 열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해 비제조업체들은 따로 경쟁하게 하는 제한경쟁 방식을 도입했다.

이 전 장관은 LG텔레콤이 유리하게 평가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제력 집중 문제와 기업경영의 도덕성 평가항목을 심사항목에 추가하도록 지시하고 “경제력 집중과 기업의 도덕성 문제를 중점 심사해 달라”고 심사위원들에게 요청, 에버넷에 불리한 결과가 나오도록 했다.

또 포항제철과 코오롱 컨소시엄인 신세기이동통신의 예를 들어 “머리가 둘이어서는 경영상의 난맥이 있다”고 지침을 내려 에버넷(삼성·현대 컨소시엄)과 글로텔(금호·효성 컨소시엄)이 불리하도록 했다. 청문평가 방법을 평균점수 방법에서 심사위원이 다수결로 선정한 비교우위업체에 만점을 주고 다른 업체는 영점 처리하는 전무배점(all or nothing) 방식으로 통신위원회의 심의도 거치지 않고 변경했다.

이에 따라 전무배점 방식에 따라 비교우위업체로 선정된 LG텔레콤이 만점(22,000)을 받고 에버넷은 0점을 받게 돼 사업계획서 평가에서 3700여점 뒤졌던 LG텔레콤이 최종 선정됐다.

◇기지국 공영화

정통부는 수도권 243개 지역을 기지국 공용화사업 지역으로 지정했지만 통신시설 설치승인과 허가 때 검토를 제대로 하지 않아 273개 기지국이 사업자별로 설치돼 103억원 상당의 국가 자원이 낭비된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드러났다.

◇시티폰(CT-2)

정통부 측은 시티폰사업은 사양산업이고 일반유선사업자들이 부수적으로 할 수 있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발신전용 휴대전화사업을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와 10개 지방 무선호출사업자에 허가했다. 사업자들이 2300억여원의 막대한 적자를 보고 지난 3월 18일 사업권을 반납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동통신요금 과다 산정

정보통신부는 PCS 등 신규 통신사업자들이 신고한 요금을 수리하면서 과열경쟁에 따른 투자비나 광고선전비 등을 모두 이용자에게 전가하기 위해 당초 사업계획서보다 12∼63% 인상해 신고한 것을 그대로 접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PCS폰의 월 기본료가 LG텔레콤은 1만원에서 1만5000원, 한솔PCS 1만2540원에서 1만7000원, 한국통신프리텔 1만2000원에서 1만6500원으로 각각 오른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이런 이유로 PCS사업자 선정과정을 총괄한 이 전 장관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검찰에 수사의뢰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