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댓 살 쯤 돼 보이는 아이들 수백명이 줄지어 입장했다. 평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400여석이나 되는 자리가 빼곡히 들어찼다. 산만한 아이들을 통제하느라 유치원 선생님들이 진땀을 뺐다. 과연 70분이나 되는 공연시간 동안 아이들이 집중할 수 있을지 걱정됐다.
그러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화려한 조명과 특수 효과가 이어졌다. 아이들의 빛나는 눈망울이 순식간에 무대로 집중된다. 이야기를 과학적으로 풀어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중간에 참여를 이끌어 내는 시간도 마련해 아이들의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했다. 아동극이지만 짜임새 있는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공연계에서 잔뼈가 굵은 정진미 감독의 노련한 연출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총연출을 맡은 정 감독은 “공연을 보면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교훈적인 내용을 습득할 수 있도록 했다”며 “너무 딱딱하지 않을 정도만 수위를 조절한 게 나름 괜찮았다”고 말했다.
로봇 애니 뮤지컬 `로봇랜드의 전설`이 공연 중인 국립과천과학관 어울림홀의 평소 모습이다. 로봇랜드의 전설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배우로 등장해 노래하고 연기하는 뮤지컬이다. 과거에도 수많은 로봇 공연이 있었지만, 정작 로봇은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주변 장치 역할에 불과했다.
로봇랜드의 전설은 로봇이 주체가 돼 극의 전반을 이끈다. 10대 이상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출연하고, 애니메이션 로봇도 등장한다. 주연 배우 키봇은 KT 키봇2를 150㎝ 크기 실사판으로 제작한 로봇이다. 생산기술연구원이 제작한 로봇 아리와 세로피는 극중에서 각각 뮤지컬 가수와 악당 졸개 역할을 맡았다. 영국 EA가 제작한 로봇 데스피안은 악당 파이론과 로보킹 1인 2역을 맡았다. 별의 힘으로 생명을 얻은 로봇들이 선과 악으로 갈려 싸우는 게 주요 내용이다.
로봇랜드의 전설은 개막 3주 만에 누적 관객 1만명을 돌파했다. 어린이 공연은 5000명만 모아도 성공작으로 평가받는 것을 감안하면 일반 공연 못지않은 성과다. 주말 가족 관객이 꾸준히 늘고 있는 데다 유치원·초등학교·기업·병원 임직원의 단체 예약까지 줄을 잇고 있다. 제작사 이산솔루션 측은 이달 말까지 3만명 관객 돌파를 기대했다.
정원민 이산솔루션 사장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관객수가 늘고 있다”며 “올해 국내 누적 관객 10만명을 달성하고 내년에는 테마파크뿐 아니라 중국 등 해외시장에도 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봇 공연이 첫 발을 내디뎠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산도 많다. 10억원에 육박하는 비싼 로봇 제작비와 로봇마다 별도로 운영해야 하는 시스템도 문제다.
정 사장은 “로봇을 모듈로 제작하고, 통합 운영시스템도 점차 개발해 비용을 줄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