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세의 디자인스토리]<23> 소프트맨 - BI 적용하기

우리가 제품에서 브랜드를 느끼는 것은 제품의 전체 모양일 수도 있지만, 질감이나 소재 또는 디테일에서도 그 차이를 볼 수 있다. 디자인 특허권을 두고 분쟁이 벌어지는 일이 늘어나는 만큼 자연스레 디테일이 쟁점이 되는 사례도 있다. 이때 중요한 뒷받침을 하는 것이 BI(Brand Identity)다.

[김영세의 디자인스토리]<23> 소프트맨 - BI 적용하기

제대로 된 BI에서 파생된 디자인은 다른 회사 디자인과 비슷하더라도 그 맥락이나 배경이 다르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은 디자인은 겉모습은 비슷하더라도 기능이 떨어지거나 기존 자사 제품과 연계성을 찾기가 어렵다. 바로 이 부분에서 차이가 생긴다.

앞서 설정해놓은 BI를 바탕으로 현대엠엔소프트의 소프트맨(SOFT MAN)은 친절하고 똑똑한 도우미 역할을 해주는 친구로 기획됐다. ▶본지 2월 25일자 김영세의 디자인스토리 〈10화〉 참조 BI 스토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소프트맨은 운전 중 스트레스를 최소화해주는 것을 목표로 시작했다. 막히지 않는 길을 잘 알려줘 답답함을 덜어줄 뿐 아니라 시각적 스트레스까지 줄여주는 게 디자인 기본 컨셉트였다. 오래 두고 늘 봐야 하는 제품으로 정직한 형상에 지겹지 않도록 디자인됐다. 더불어 실제 제품에 차별화된 개성을 부여하기 위해 독특한 BI 형상을 디테일로 섬세하게 표현하도록 애썼다.

내비게이션 앞면은 매우 단순하되 얇게 보이도록 각도를 줘 시각적인 부담을 줄였다. 뒷면은 볼륨감 있는 면의 변화와 함께 스피커 타공 부분에 BI 형상을 적용했다. 이는 기존 제품과 차별화를 꾀하면서 소프트맨 BI를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위한 적용 방법이다. 동일 모델의 8인치 내비게이션은 7인치 내비게이션과 같은 성능을 가진 제품으로 디자인은 통일하면서 슬림해 보이는 효과를 더했다. 앞뒷면 디자인은 같지만, 옆쪽에 별도 피스를 활용해 무광과 유광의 대비를 극대화했다. 제품이 좀 더 얇고 세련돼 보이는 효과다.

소프트맨의 유연한 아름다움은 기존의 딱딱하고 거친 내비게이션 거치대의 변화에도 드러난다. 이노디자인은 흔히 번들 제품이라고 생각해 소홀하게 다루는 내비게이션 거치대에도 세밀한 디자인 터치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잘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가치를 불어넣는 것이야말로 차별화며, 디자인이 존재하는 이유다.

블랙박스 디자인 과정에는 마인드맵을 활용해 사용자가 원하는 심리적 기능을 디자인으로 반영했다. 소비자는 꼼꼼한 기록자로 위기의 상황에서 나를 도와주는 작지만 든든한 블랙박스를 기대한다. 디자이너는 차안에서 볼 수 있는 블랙박스의 1인칭 관점과 밖에서 드러나는 3인칭 관점을 고려해 제작했다. 내게는 믿음직한 친구면서 다른 누군가에게는 감시와 경계를 늦추지 않는 모습을 망원경(잠망경) 모양으로 형상화했다. 소프트맨 BI 이미지에서 곡선을 살리고, 전방과 후방 카메라의 통일성 있는 독창적 디자인을 완성했다.

브랜드 정체성을 정성스럽게 만들고, 그 후 전혀 다른 맥락의 제품을 내놓는다면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인식시키는 일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이는 우리 기업이 흔히 범해왔던 실수이자 맥락 없는 디자인의 결과물이다. 기업이 커지고 관여하는 인원이 많아지면 BI에 대한 관리와 사용도 복잡해진다. 실력 있는 디자이너와 기획자가 필요한 이유다.

이노디자인은 소프트맨 BI부터 제품 디자인까지 맡아 통일성을 잡았다. 이는 궁극적으로는 소비자의 마음 한구석에 소프트맨의 자리를 만들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재구매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BI를 디자인 컨셉트로 잡는 방식은 내가 1980년대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교수로 재직할 때 제안했던 `CIPD(Corporate Identity through Product Design)` 이론에서 처음 시작된 이노디자인 특유의 디자인 전략이다. 소비자가 제품의 모습만 보고도 기업의 CI나 제품의 BI를 연상할 수 있다면, 고비용의 광고보다 효율적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여러 회사의 디자인을 맡는 이노디자인은 고객사 각각의 아이덴티티를 창조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차별화된 디자인을 넘어 기업 자체 정체성이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 twitter@YoungSe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