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과학의 날의 의미와 변천사

최문기 신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생애 첫 훈장을 받은 날은 지난 2009년 4월 21일. 제42회 과학의 날 때다. 당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이었던 최 장관은 이날 `과학기술훈장 혁신장`을 받았다. 1978년 이후 30년여간 ETRI와 함께하며 여러 연구 성과를 이룬 업적을 인정받은 것이다. 최 원장은 소감을 묻는 질문에 “앞으로 과학과 ICT가 국가 경제위기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당시에 말했는데, 그 다짐이 결국 4년만에 다시 `과학의 날`을 즈음해 빛을 발하게 된 셈이다.

과학의 날은 국민에게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알리고 과학기술 발전에 동참을 유도하기 위해 제정됐다. 1967년 4월 21일 설립된 과학기술처 탄생을 기념, 이듬해인 1968년 4월 21일부터 1회 행사를 시작했다.

일제 시대에도 과학의 날이 있었다. 당시 과학의 날은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잡지 `과학조선`을 창간하고, 과학기술 보급회를 창립한 김용관 교사가 `생활의 과학화! 과학의 생활화!`를 목표로 1934년 4월 19일에 과학의 날 행사를 개최해 국민에게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알리는 대대적인 국민계몽운동을 전개한 데서 비롯됐다. 최초의 과학의 날을 4월 19일로 정한 이유는 인류의 사상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다 준 진화론의 주창자 찰스 다윈의 사망일에 맞춘 것이었다.

당시의 기본정신은 `우리의 모든 생활방법을 과학적으로 개선하자` `다같이 손잡고 과학조선을 건설하기 위해 분기하자` 등의 구호에서 찾아볼 수 있듯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민족의 힘을 기르고, 이를 토대로 독립을 앞당기기 위한 민족 운동였다.

이에 대해 일제는 과학의 날을 핑계로 민족운동을 전개한다는 이유로 행사의 지도자인 김용관 선생님을 감옥에 가두고 더 이상 이 행사를 계속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중지됐다. 이후 과학기술처 설립과 함께 과학의 날이 다시 부활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올해는 과학의 날 기념식이 따로 열리지 않는다. 미래부 출범 이후 정보통신의 날(4월 22일)과 통합해 19일 열리는 `한마음대회`로 기념식을 갈음한다. 하지만 오랜 역사와 고유의 의미를 가진 과학의 날이 제모습을 갖춰 법정 기념일로서의 위상을 재정립하길 원하는 것이 모든 과기인들의 바람이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