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한 호텔 객실. 국적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심각하게 협상을 벌인다. 긴장감이 감돈다. 협상 테이블에는 다양한 서류와 노트북이 펼쳐져 있다. 주위에 덩치 큰 사람들이 총으로 무장을 하고 있다. 협상 당사자들과 관계없는 또 다른 한편이 있다. 이들은 미리 설치해 놓은 도청장치로 협상 내용을 엿듣는다. 복잡하고 미묘한 상황이다. 갑자기 팽팽한 긴장감을 끊는 일이 발생한다. 순식간 협상은 깨지고, 총격전이 펼쳐진다. 영화 베를린에서 북한 정부 요원이 아랍계 무기상과 거래하는 한 장면이다.
그렇다면 실제 무기거래는 어떻게 진행될까? 무기거래는 한 번에 수조원, 수십조원이 거래될 정도로 규모가 크다. 그만큼 복잡하고 미묘한 분위기가 연출될 때도 많다. 얼마 전 국산 고등훈련기인 `T-50` 수입을 검토하기 위해 한국을 방한한 인도네시아 대통령 무기구매 특사단의 무기구매 정보가 담긴 노트북을 괴한이 훔쳐간 일이 발생된 적도 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정말 일부다. 선진국과의 무기거래 대부분은 공식 절차를 밟는다. 무기거래 로비스트조차 공식적으로 활동한다. 단지 무기를 팔고 사는 당사자 간에 팽팽한 협상이 펼쳐질 뿐이다. 협상 속에는 절충무역 내용이 포함된다. 무기를 구매하면 그 속에 들어가는 핵심기술을 이전해주는 교역이다. 절충무역으로 탄생한 것이 국산 고등훈련기 `T-50`이다.
그러나 핵심기술을 이전받는 것이 쉽지 않다. 더욱이 무기체계에 내장된 핵심 소프트웨어(SW) 기술을 이전 받는 것은 더욱 어렵다. 무기를 팔려는 입장에서는 기술 이전을 최소화 하려고 하고, 사려는 입장에서는 최대한 기술이전을 받으려고 한다. 핵심SW 기술 이전으로 국산화를 하겠다는 의지가 강하지 않는 한 성과를 거두기가 쉽지 않다. 그동안 핵심SW 기술이전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도 사실이다.
최근 우리나라가 무기체계 SW를 적극 추진하려 하자 선진국의 무기판매 기업에서 변화가 감지된다. 기존에 수백억원에 이르던 SW가격을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자체적으로 만들지 말고, 자기들 것을 저렴하게 가져다 쓰라는 것이다. 국산화를 하려는 움직임만으로도 작지만 성과를 만들었다. 무기체계SW 국산화를 적극 추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혜권기자 hkshin@etnews.com